I 隨 想 ‘‘고향생각“ 1 n0 / /각 나의 고향은 북쪽의 凍土 안에 있다. 그곳의 부모형제는 추위와 굶주립을 겪다 가 그 위대한 영도자라는 사람의 은혜를 봇받고 타계했다. 그래서 고향을 생각하면 슬퍼지기만 한다. 한번 떠나온후그쪽에 영영 갈수 없어 부모님의 임총을못했고, 부모님의 산소에 성묘 조자 할수 없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슬픔이 복 받친다. 슬하를 떠날 때 전쟁 중이어서 생사만을 생각 하느라 작별의 인사말 하는 것도 잊어버렸으니, 그때 “어머니, 아버지 몸조심하시고 안넝히 계 섭시오. 전쟁이 끝나면 곧 돌아오겠습니다.”이 런 말도 못하고 떠난 것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 아가 찾아뵙지 못했지만, 아들이 꼭 돌아 올 것 이라는 기대라도 가지고 사시게 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서다. 그래서 나는 고 향을 생각하면 슬픔밖에 없다. 이산가족 고향방문 한다지만 고향이 아니고 평양이더니 이젠 금강산에서란다. 그것도구걸 하다시피해서 이루어진다. 70여만명이 그나마 기다니고 있는데 가끔 1년에 100명 아니면 200 명이니 내 차례는 내가 죽은 후 50년이 아니면 100닌 후에나 차례가 되는, 그런 계산도 나온 다, 나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살다가도, 행여나 하고 또 기다린다. 그래서 고향을 생각하면 슬 프다못해분통이 터진댜 고향생각을말지, 그러면슬픔도 없을것이라 고, 타향도오래 살아 정이 들면 내가 살던 고향 산천이라고. 그렇게 남의 말 쉽게 합 수도 있겠 지, 그렇게 위로하고, 또 자위 할 수 있겠지, 그 래도 고향은자꾸 생각나고슬픔도 끝이 없다. 나의 성장기의 그 천진합과` 가족과 같이 행 생각하면 그것도 후회된다. 그때의 일들을 생각 복했던 그 시절의 추억의 배경, 그 아름다운 고 하면 슬픔이 이내 눈불로 이어진다. 생전에 돌 향 산천읍 빼앗고, 부모형제 와도 헤어지게 만 들고, 그 약탈자가 고향을 못가게 하다가 지금 은 그의 아들이 권력을 상속받고 대를 이어 고 향땅을凍土로 만들고 백성들은굶주리계 하면 서 양곡배급으로 복종을 강요하고 고향엔 업싼 도못하게한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고 같은 형계이니 분단된 I 78 法務士6월호 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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