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부러져 죽고 목도를 놓으면 맞아서 죽었다고 하여 고 때부터 고 바위 이름을 ‘‘매도 죽고 놓아도 죽 는 바위’’라고 불러온다는 설명이다 바위를 옮기는 과정이 어찌나 혹독하였는지 자료관 에 걸린 작업 당시 촬영해둔 흑백사진이 이를 증명하 고있었다. 왜놈 한명은 옮기는 바위 위에 올라선채 기다란 쇠 촛매를 휘들고 있고 한센병 환자들은 목도를 맨체 안 간힘을 썼으면서 바위를 옮기는 장면을 보니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설사 노예라도 그런 악독하고 잔인무 도한 행위는 못했을 것이다. 한센벙 환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오로지 짐승 취급을 한 왜놈들의 처사는 필자가 외정시 대를 겪은 바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 를 하고도 남았다. 그 학정을 건디다 못한 일부의 환 자는 한밤 중 어두운 틈을 타 통나무 또는 물통에 의 지한 채 생명을 걸고 육지로 헤엄쳐 도망친 자도 있었 고, 그러다가 불행하게도 붙잡힌 자는 그 측시 감금실 로 끌고가 가두고 직접 때려죽이는 직결처분을 단행했 다는 것이다 안내자의 설명이 끝나자, 법무사회 광주 지부장은 안내자에게 위문금이 든 봉투 하L~ 전달하 고 안내자를 따라 자료관에 들었다. 고 안에는 한센병 이 발병한 원인과 층상이 소상하게 기록되 어 있고 각 종 치료약이 진열되어 있으며, 고 밖에 병원이 생긴이 래 지금까지 발생한 사건 사고에 대한 설명서와 사진 등이 빽빽이 걸려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환자의 가족들이 면회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진이 있었 는데 환자가 어린애를 출산할 경우 병원균에 대한 저 항력이 약해서 금방 전염이 되기 때문에 남자 환자는 소록도에 수용되 면서 그 측시 정관 수술을 하였고 여 하게 하였단다. 환자가 아닌 환자의 처가 외부에서 면 회하러 왔을 때도 반드시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것을 확인한 연후에 면회를 시켰다는 설명이 다 수용과정에서 어린애를 분만한 경우에는 어린에만 따로 격리 수용했단다 또 2대 원장인 하나이(花井)원장에 대한 안내문을 보니 고분은 우리나라 사람의 생활방식을 일본식으로 친절히 가르쳐 주었고, 신사 참배도 무리하지 않게 자 연스럽 게 시키고 환자들을 따뜻하게 성의껏 보살펴 선 정을 베풀어준고 은덕으로공덕비까지 세워주었는데, 지금도 고공덕비가 남아 있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중앙공원으로 발을 옮겼다. 희귀한 정원수가 고목으로 자라 아름다 운 자태를 뽐내먼서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나 무들은 대만이 나 완도등지에서 옮겨온 희귀한 식물들 이라고 한다 공원 한복판에 이르니 구나탑(救獅塔)이 인상적01다 구나탑을 세웠던 자리는 원래 악독하기로 소문난 4 대 원장 슈호가 자신의 동상을 세웠던 곳으로서 자신 의 동상 앞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사열을 받던 도중 한 환자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손가락이 모두 떨 어져 없어진 그 환자는 과거 슈호 원장으로부터 갖은 폭행과 학대를 받은 원한으로 고에 대한 복수심 이 생 겨 그를 살해할 목적으로 미리 쇠조각을 주어 둘에 갈 아 칼을 만든 다음 이를 자신의 팔뚝에 붕대로 동여맨 채 사열 받은 슈호를 향해 험껏 찔러 마침내 죽게 했 다고 한다. 그 후, 해방이 되어 슈호의 동상마져 헐어 내었고, 1963년 고 자리에 구나탑을 세웠다는 설명을 들으니 고 환자의 애석한 마음 금하기 어려웠다 구나 자 환자 역시 임신중절 수술을 하여서 자녀를 출산 못 탑을 지나 위쪽으로 오르니 드디어 한하운의 보리피 리 ; 1 64 法務士]2 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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