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법무사 12월호

N -- 하여 벽돌 공장을 세우고 그 섬에서 생산된 황토로 벽 둘을 만든 다음 예배당 회관, 치료실 등 중요한 각종 건물 50여동을 지었는데 지금도 고 벽둘 건물들이 고 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내자와 작별을 하고 버스에 오르니 다른 버스는 이미 출발해버렸는데 필자가 탄 버스기사는 기왕에 이 곳까지 왔으니 환자촌과 섬 일부를 드라이브 시켜준다 기에 고맙게 여기고 지나면 서 보니 흰 모래밭과 푸른 솔밭이 어우러 진 바닷가와 속이 말갛게 비쳐 보이는 푸른바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황금편백이나 실펀백 히 말라야 삼나무, 동백 고 밖에 철철이 피어나는 매화, 진달레 연상홍 나무들 또 무시로 날아드는 새소리 가 가득한 소록도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야말로 말로써 형 언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천혜의 극치를 이루고 있 었다. 필자가 소록도를 처음 방문한 것은 해방이 된 이듬 해인 1946년경이다. 고 당시는 소록도를 중간쯤에 철 조망을 설치하고 철조망 서쪽에는 한센병 환자들을 수 용하고 있었는데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를 하고 있어서 철조망 근처에도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 반대 편인 동쪽은 환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그 곳은 마음대로 출입이 가능했었다 병원도 앙쪽에 따로 따로 한 개씩 두 개가 설치되어 있어서 일반인이 사용하는 병원 안에 들어가는데 유리관 안에는 한센병 환자의 목을 절단한 두상 세 개를 유리관 세 개에 각 기 나누어 넣어둔 것을 보니 한센병 이라는 병이 얼마 나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소록도를 가보니 옛날에 보았던 철조 망은 온데 간데 없고 고 대신 고 경계 지점에 검문소 로 보이는 조그마한건물 한채만 덩그러니 서있었다. 고러니 일반관광객들이 환자들이 사는 지점까지 자 유로이 왕래를 하면서 구경하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이 들었다 서둘러 소록도를 떠나니 오늘의 행사는 이걸 로 마무리가된 셈이다. 참고로 한때 소록도 병원에 수용 당한 한하운 시인 을 소개 하자면 1919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셔 태어났 다. 본명은 한태영이다. 함홍제일공립보통학교와 이리 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 가서 고등학교 2 학년을 다녔고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943년에 북경 농학원을 졸업했다 귀국한 후, 한때 함경남도 도청 축 산파에서 근무를 하기도 하였으나 그 이전부 터 앓던 한센병 이 심해져서 고만두고 서점을 경영한 적도 있 다 1948년에 월남하여 유랑생활을 하기도 했고 보육 원을 설립하고 한센병 환자 구제사업을 벌렸으며 출판 人槿룰 경영하기도 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시를 썼지 만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1949년에 ‘‘신천지’’에 ‘‘전 라도감등 시12핀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고해에 첫 시집 ‘‘한하운 시조’’를 냈고 이듬해에 ‘‘보리피리”와 “한하운시전집’’을 냈다 1960년대부터는 거의 시를 쓰지 않고 지내다가 1975년에 세상을 떠났다. 한하운의 시는 한센병 환자라는 절망적 상황을 바 탕으로 하면서도 감상이 나 원망으로 빠지지 않았고 한 국시사에 기록 될만한 서정적 가락으로 생명과 건강한 삶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매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에 새긴 보리피 리 시 를옮기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그리워 피己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청산 어린때그리워 피근님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 )의 거리 인간이그리워 피己닌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인덕을 피已닌니리 李 彩 薰|법무사 I 66 法務士]2 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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