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은 그렇게 서글픈봄과 허전한 가을을보내고 한 해를마무리지은 것이다. 내가 벌써 이 렇게 찬비를 맞고 떨어지려는 가을 나뭇잎과 같은 처지가된 것이 아닌가생각하니, 인생 무상에 부질없는 감상에 잠긴다. 인생이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가지고 태어나 죽음과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죽음은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그래서 죽음은바로 발앞에 깔러있댜 소년일 때나는모전고생을하면서 번곤에서 어떻게 벗어날것인가하는데만매달려축음의 고 립자를 인식 뭇하고 살았다. 마치 녹음속에서 녹음을 즐길 때 가을의 낙엽을 생각못하는 것과 같 이 ... 청년이 되어서는한때 무장을 하고 전장에서 적과대치하고 있을 때 나는 이 전투에서 어쩌 면 죽을지도 모른다는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가져본적이 있는데, 이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죽음 보다도 더 창아내기가 힘들었는데도 전쟁이 끝난 후에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해져서 인지 다시 그 것을잊고살았다. 돌아가신 누님께서는 82세로, 말기 간암으로 입원해 있었는데 내가 문병을 가면 몇 번이고 "더 살아야 할텐데”라고 말씀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장모님은 89세 였는데, 가슴이 답답하다고 입원하 셨는데 몇 일 뒤 뇌혈관경색으로 의식을 잃고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셨기 때문에 아무런 고통의 호소도 없이 몇 일만에 운명하셨다. 더 살수 없는 분은 더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자식들은 자마 암이라는말씀을 못해 드리는 것이 고민이었고, 의식 없이 산소호흡기에 의촌해 연명하시는 분에 대하여는 담당 의사가의학적으로 더 치료 할 것도 없고, 의식회복의 가망은 1퍼센트도안 된다고 하지만, 고 산소호흡기를 연세까 지 둬야 할 것인지에 가족들의 고민이 생긴다. 두분이 업원해 계실 때 문병 가서 나는두분의 손을 만져 보았다. 6 • 25사변 때 두분 다 이북 에서 맨손으로 피난와서 고 가시발길 같은 환경을 개척하느라고 연약한 손으로 모전 일마다 않고 일마나 열심히 사셨는지를 나는잘 알고 있다. 두 분이 하신 일은 달랐지만 일생을 근면하고 점소하계 생활 하셨기에, 거치리전 손을 만져 보 면서 어떤 말로든고생한일생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위로뿐아니라냐에 대한고마운말씀도 그분들의 생전에 해느려야 내 마음의 빚을조금이라도 갚을 것 같아서다. 누님은 거세도에서 당신의 피난 생활이 어려우면서도 서울에서 지내는 내가 고학을 하면서 냉 돌 방에서 겨울을 지낸다는 말을 누구에게서 전해듣고 공나물을 손수 길러서 판아 푼푼이 모은 돈 일마를 연탄 사는데 보태 어 쓰라고 나에게 보내주시면서 꼭 성공하기를 빈다고 하시 던 일이 생각난다. 그래서누님의 정은평생 잊지못하고산다. 고리고 내가결혼 한지가40턴이 되는 해에 장모님이 돋아가셨으니, “사위 사랑은장모’’라고 장모님은 고 동안 음으로 양으로 각별한 사랑을 주셨는데, 고증 돗잊을 일 하나는 30넌 전 내가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 장모님이 문병 오셔서 생명이 꺼져 갈듯한 나의 몰골을보고, 하시는말씀이 ”가족을다 이북에 두고혼자 피난온몸인데 젊은 나이에 여기서 죽는다면불쌍해 서 내가 어떻게 보겠나살아야하네 살아서 통일이 되면 집에 가봐야하지 않겠나’’라고하신다. 미만쁩민麟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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