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법무사 6월호

상륙명령이 떨어지자모두가긴장속에 이미 지 급된 경무장과 인민군 복장으로 변장을 하고서는 상륙을 시작하였다. 서해안에서도 맥아더장군이 지 휘하던 유엔군이 고해 9월 15일 인천 월미도에 이미 상륙을 한 관계로 그때부터 기세당당하던 적 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전 전선에서 그들은 퇴각하 기 시작했다. 이때를 맞추어 우리 부대는 적의 퇴 각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적들의 후방을 가격한 것 이다. 막상상륙을 하고보니 적의 주력부대는 이미 되각을 하고 최후의 저지병과 전상으로 인한 낙오 병들만 납아 있어서 이들과 여 러번 조우하여 격전 에 격전을 거듭하게 되 었다. 삼척을 탈환하고 계속북전중 강릉과 양양, 속초 를 차례대로 탈환하여 전공을 세운 나머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받기도 했다. 특히 북진과 1.4후퇴 이후 기 억에 남는 것은 강 롱 오대산과 발왕산 그리고 도계전투에서 피 아간 에 사상자가많이 생겨나고 밤이면 서로가 쏘아대 는 현란한 예굉탄 빛은 요즘의 불꽃놀이와도 같이 훤하게 산야를 밝혔으며 전광석화와 같은 탄혼8單 浪)들이 수없이 오가곤 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한창 열기가 방지信(窓)하던 시기라서 우리 어린 전우들은겁도 없고두리움도없었다. 강원도 오대산? 발왕산? 전투에서는 나와 같은 조에 속한 대구계성학교 재학생 정수영 전우는 우 리가파놓은 개인호를사수하기 위하여 우리 두사 람이 공격해오는 적진을 향하여 정신없이 총격을 가하고 있었는데 애석하계도 그 전우는적의 유탄 에 머리를맞고고자리에서 산회(散~句한것이다. 인명 재천이라고 하더니 사람이 운명을같은 장소 에서 이렇게 생과사로갈라놓은 것이댜 지금생 각하면 내가다남매가아니고독자로 귀하게 자란 ■■■■■■ 몸이였더라면 그 전투에서 틀림없이 황천객이 되 었을것이라는생각이 가끔들기도한다. 고로부터 일마후 도계전투에서는 야간에 적과 백병전이 전개되어 죽이고 죽고하는 아수라장이 벌어져 많은 인민군을 무찌르고 아군의 잔사자도 14명 이나 되 었다. 이 전투에서 필자는 직 집 참전하 지 못했고산회한 전우들의 시산만운구한적이 있 다. 그때 산희한 시 신을 무명지 잔잔한 산골 여울 가에 모아놓고 구슬픈 진혼 나팔속에 화장을 하여 영혼들을 하늘나라로 날려보내고 고들의 육신인 한줌의 재 봉지만 쓸쓸히 남긴 재로 전우들의 마지 막 장송곡을뒤로하고그들 전우는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버렸다. 정덩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도 같단 말인가? 그 렇게도 허무하게 한번 활짝 피 어보지도 못한 애송 이꽃봉오리들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발왕산아 잘있거라 우리는 선신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 화랑담배 연기속에 전우야 잘자라. 우리는 이렇게 전우가를 소리높여 부르면서 적 개삽을 불대우고 또 죽음이 기다리는 적전을 향하 였다. 먼저 간 전우들처 럼 언제 어디 에서 죽을지도 모르는우리의운명을행운의 여시에게 맡기고날 이 새면 북전 또 북전을 계속하였다. 고러다가 적을 만나면 용감히 씨우고 이렇게 수없는 전투를 계속 하다가강원도동해가보이는양양, 속초를거쳐서 지금의 통일전망대가 있는 간성까지 진격해 갔는 데 어느날갑자기 후되명령이 떨어졌다.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고들의 인해전술 앞에 작전상 일시후퇴를 하게된 것이다. 그날이 바로 1951넌 1 월 4일 소위 말하는 1.4후퇴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대만법무사엽외 53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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