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 I 6 • 25 參戰少年卑走兵手記 (4)14 후퇴 군사작전상 후퇴는 했지만 그때 우리측 피 해는 군민(軍民할 것 없이 막심했다. 우리군의 최전방 부대는 이미 압록강 부근초산까지 진격해 있었으 며 여기에서 후퇴하는그 험난한 퇴로야말로 말할 수없는고통과회생이 따랐다. 우리 부대도 고 당시 도보로 강행군을 하면서 장 장 보름 동안을 고성, 속초를 거 쳐서 전부령 고리 고 이름모를 산야를 헤메이민서 후퇴를 거듭하다 가적군의 포위망에 걸리들어하마터면전멸할뻔 했으나 천우신조로 새벽 안개 덕분에 아슬아슬하 게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아마 거 기 가평칭에 있는 발왕산이 아닌가하고 기 억된다. 고때 필자는 제2중대 1소대 1분대 소속으로 분대 장 차영기의 8명의 분대원들이 그의 지휘아래 지 금기억나지 않는어느산자락까지 내려가서 척후 병으로활약한바가있었다. 그 당시 온산야는 눈으로 하얗게 뒤덮혀 있었는 데 흰 방한복을 입은 층 겅, 둘이 물멸듯이 우리쪽 으로 향하여 기 어오르고 있었다. 다급한 냐머지 나 와 박재식(고향 같은 학교 출신) 전우가 총을 쏠려 고 하는데 분대장 차영기가 달려와서 세지를 명하 였다. 층과부적의 적군앞에 주눅이 들어 옴식달삭 도못하고중대본부가 있는산정상으로후퇴를한 것이댜 올라가보니 중대본부도 이미 떠냐고 없었 는데 고아가 된 우리 분대는 간산히 무사히 본대를 찾아갔다. 고때 분대장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 며 지금도살아있는전우들을[만나계 되면그 당시 의 이야기를 하며 그곳이 우리들의 공동묘지가 될 뻔하였다고들한다. 약전고투 끝에 거듭된 후퇴는 최종집 결지 에 도 착한곳이 공교롭게도 처음 우리가상륙했던 경북 울전이 였으며 그곳노음조등학교에 총집결을 하였 던것이다. I 54 法務士6월모 고때의 피 나는 후퇴과정을 여기서 잠깐 말한 것 같으면꿈에도생각하기 싫은고통과시련의 연속 이였다. 십리허(十里虛)에 떨어전 인민군을뒤로하 고 대 열에서 낙오되면 고들의 밥이 되어 불귀의 몸 이 될것이고부대행열에 따라가자니 배고품과쏟 아지는잠괴옷에부글거리는 ‘이'들때문에이루 말할 수 없는 모전 고통이 따랐지만 고래도 살아 나머기 위히여 어쩔 수 없는 강행군을 계속하였으 냐 차마 살아 있어서 죽은 사람이냐 다름이 없는 나날이였다. 세수는 물론 목욕한번 못하고 몇 달 을 지세운 관계로 얼굴은 니나 할 것 없이 얼룩무 늬의 사나이 였고 행군도중에 1潟! 동안의 휴식시 간에는졸음을봇이겨토끼잠을자든가, ‘이’ 소탕 전에 모두가 시간을 소비했다. 속 내의를 뒤집어 일일이 손으로잡기는 시간이 너무아깝고 차라리 내의를홍딱뒤집어놓고고속에갈려있는깨알같 은수많은이 덩어리를처음에는손으로털다가그 래도안돼면 끝내는눈(雪)에 대고 비몄댜 그러고 나면 하루동안만이라도 ‘이’ 들로부터 고통은 면할 수가있었댜 먹을 것이라고는 민가에서 뒤져온 마른 옥수수 가고직이었고그 마저도 없을때에는통김치 조각 을씹다가그래도 안되민물로허기진배를재우고 서는강행군을계속하였다. 굶주리고지친몸은행 군중에 쓰러지고, 쓰러지면증대장이 권총을 빼들 고 어서 일어나라는불호령 앞에살아남기 위해서 는 또 일어나서 발걸음을 재촉하다보면 부대후미 는보이지 않고멀리 가고 없었다. 더욱이나 나는 체구가 적은데다가 내 발에 맞지 않는 큰 군희를 산고 눈속을 강행군한 관계로 산발 속에 눈이 들어와서 발은 발대로, 군희는 군화대로 각각 놀다가 보니 군화 창바닥에서 못이 튀 어냐와 서 발바닥을사정없이 쑤셔놓아 양말은온통 피로 엉겨 있었다. 고렇게 하여 모전 목숨 부지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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