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 I 6 • 25 參戰少年卑走兵手記 이 전투에서 단신으로 월님하여 우리군에 입대 하여 우리 분대장이였던 명상희 중사가 또한 적 탄에 맞아 현장에서 장열히 산화한 것이다. 이 분 의 고향은 평북이라는 것과 부모처자가 있는 줄 로 알고 있는데 수없이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그동안 그들 가족이 무사히 살아 있다고 하면 이 와 같은 사연도 모르는 채 아들, 남편이 돌아올 날 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정덩 안타 깝고 목이 메인다. 아무쪼록 명중사님의 명복을 빌뿐이댜 그리고 국시봉전투의 부산물로 가막힌 또 하나 의 비극적인 사연이 별어전 사건이 있다. 그날전 투를마무리하고평소에 적들이 자주출몰하는무 명고지를 수색하고 지날 무렵에 갑자기 숲속에서 “오빠“하는소리에 뒤돌아보니 피골이 상집하고 흐트러진 머리재를 한물귀신 모양의 한 여인이 우리 증대장 앞으로 천천히 다기왔다. 한창동안 고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성률 중대장은 너 0 0동생 버들이가 아니냐고 하는 그 여 인은 울음 보를 디토리면서 중대장의 가슴에 안겼다. 사연을 알고보니 그 여인은 평양에서 고등교육 을받은 나름대로의 귀한집안의 고명딸로서 고의 오삐와 중대장은 둘도없는 친구사이 였던 것 같다. 6 • 25 사변통에 어떻게 하여 휘말렸는지 그 여 인은안타깝게도 적의 우두머리 순창군단 위원장 의 현지 처가 되어 몇 년 동안을 산속에서 빨지산 생활을 해온 관계로 몸은 지 질대로 지 쳐 있었으며 거기에다가 성병이 만연되어 하체에서는 피고름 이 나고 발바닥은 동성에 걸려 붕대를 감고 있었 으며 걸음마져도 세대로 걷지 못했다. 이 기막힌 사연이갑자기 벌어지자중대장은부 대원들을 먼저 가라 하고 서는 나와 이문갑, 연락 병만뒤따르고 있었는데 고 여인을 어깨동무로부 I 58 法務士6월모 축하면서 옛날고향 평양에서 있었던 추억담을나 누면서 간혹 웃음도 나오고 하더니 그 여 인은 일 마 더 걷지 못하고 당에 별렁 주저앉으면서 “오빠 나 더 걷지 뭇하겠어” 이 말 끝에 중대장은 다시 여인을 일으켜세워 몸을 부추기고 같이 길어가다 가 그의 오른손이 차고 있던 권총에 가더니 슬그 머니 뽑아들고고 여인의 오른쪽 귀에 갖다대고 서는사정없이 방아쇠를잡아당겼다. 말한마디 더 뭇하고 여인은 힘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다함께 시신을거두어 양지바른산자 락에 가매장을 하고 중대장은 쓸쓸한 표정으로 뒤 돌아섰다. 세상에 사상도 중요하고 주의 주장도 좋거니와 이렇게도 인정미리가메마른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생각이 들면서 비정한 그의 뒤를따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아마도 고분의 판단으로서 는 그 여인이 극도로 피폐된 심신상태와 망가진 육신을봐서 더 이상지탱할수 없는구제불능의 패 인이 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기 왕지 사 오래살지 못할 바에야 사랑하는 오빠 대신에 고히 잠들게 한것이라는생각이 들었다. 이 길면이 그를 전정 아끼고 사량하며 고통으로 부더 해방을 가져다 준 최후의 차선책 이 아니였나 하고생각한다. (8) 포로경 비(捕虎警備) 1951넌 1. 4 후퇴로 경북 울진에서 정규육군으 로 태어난 그해 2월경부터 후방경비와공바토벌 작전에 종사한 우리 학도병들은 정읍군 일대에 산재해 있던 공비의 소굴을 빠짐없이 소탕하고 치 안을회복하여 경찰에 넘기는등하여 상승학도병 의 자촌심과 체면을 살리고 우리의 임무를 일단 마무리했다. 고려던 중 어느날 우리 부대는 저 유명한 거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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