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법무사 6월호

잠겨 보기도 했다. 내가 근무하던 그때 고 산야의 모습들은 간데 없고 오고가고 하던 수많은 피 아간 의 포로들마져 흔적없는 적막강산이고 본즉 이것 이야말로 격세지김이요 인생무상을 새삼느끼지 않 을수가없있다. (ll) 포로교환(捕虛交換 1953넌 한창 대양열이 이글거리는 8월초에 우 리둘파견중대원들은판문점으로이동을 하여 야 전천막을치고매일같이 오고가고하는수많은교 환포로들을 위해 경비근무에 임하고 있었다. 납 쪽에서 군용트릭에 실리오는공산군포로들을판 문점 중립국 감시위원들의 입회아래 넘 어오는 우 리 국군과 유엔군 포로들과 명단을 교환하고 고 인계 인수가 끝나면 쌍방의 군사분계선 너머로보 내게되는것이다. 그때 오고가고 하던 피아간의 포로들을 연도에 서 지 켜보노라면 넘 어오는 우리측 포로들은 하나 같이 맥이 쑥빠진재로풀이 축어 말없이 조용한 상태였으나 공산군 포로들은 제네바 협정에 다른 충분한 대우로 지급된 각종물품들을 소지하고 그 들의군기를목이 터지라고부르면서 의기 양양하 계 넘 어갔다. 특히 막판에 넘 어간 사상무장이 철 두철미한 악질포로들은 지급받은 보급품과 심지 어는 입고 있던 의복까지도 미제價澳默즌 싫다고 하여 모두 벗어 연도에 던지고는 팬티하나만 몸에 걸치고 인공기가그러진붉은머리띠를동여메고 인민공화국만세를외치면서 이북으로넘어갔다. 이러한가운데 한여름의 일기도 거의식어갈무 렵 인 8월 하순에 집 어들자 마지막 교환대상자는 피아간에 중요인물 들이었다. 넘어오는 우리측은 유엔군 미 제2사단장이 였던 띤 소장이 였으며 이 분은대전지구전투에서 포로가 된사람이고 넘어 ■■■■■■ 간 공신측 포로는 이릅은 알 수 없으나 중공군과 인민군의 고위장성들인 것 같았다. 띤 소장이 넘 어오던 날은 이 분을 각별히 마중하기 위하여 우 리 모두가 연도에 나가서 지 겨보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댜 냐중계 안 사실이지만 그는 특별예우로 일반포로들과는 날리 트릭에 태우지 않고 앤불란 스 구급차에 별도로 태워서 수송한 관계로 볼 수 가없었던것이다. 이렇게 하여 역사적인 포로교환도 어느덧 8월 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땅거미가 끼는 9월에 접 어들자 구슬피 울어되던 풀별데의 노래 소리를 뒤로 한 채로 아득한 추억속으로 역사의 장을 마 감하계 된 것이다. (12) 만기제대億期除隊) 1954년 7월 25일 국민의 4대 의무중 하나인 병 역의무를 무사히 마치고 입대일 1950년 8월 8일 부디 가산하여 14일 부족한 4넌만기 제대를 한 것 이다. 피 비린내 나는 생사의 현장에서 축지않고 살아서 돌아온 기 적같은 사실을 하늘이 돕고 내 일선조仮|j先祖)가돌뵈주신덕분에 목메이게 그립 고보고팠던 내고향 부모형세를찾아돌아오게 된 것이댜 정덩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f~)은 간곳 없단말인가? 어럴 때 같이 물장구치며 뛰어놀던 옛친구들은다어디로 가고무심한뭉개구름만나 를반기고 있단말인가? “사무친 전쟁통에 터 러는 죽고 행방불명 이 되거 나 혹은 부역자(附逆者)가 되 어 소식마저 단절되 어 만날 수 없는 무정하고 야속한 사람들아 나는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는데 어디에선가살아있다 면 근소리로 명윤아하고 다정한 내이름이라도 불 러나불것이지’’ 이런생각저런생각감회가 뒤엉 킨 가운데 부모형제 친지들과의 희한ti海恨)속에 대만법무사엽외 61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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