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야 했다. 그들은 역사가 마치 현실에만유착하여 주도되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해방되던 해 서울의 인구 85딴명이 었던데 반해 1944년말 수 많은 일본군인들은 제외한 그들 순수 민간인수가 15 만8천 710명이였다는사실은 장차어떠한충격에도 세상은 이미 바뀔 까닭이없다는 인식이 지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고래서 서둘러 투항해버린 고 런형국은아니였을까생각해본다. 문세는 일 인들에게 고분고분했던 고래서 내선일 체의 기폭제가 되었던 몇몇 친일 인시들이 해방정국 의혼란을틈타서 용게도운명의 충돌없이도재빨리 건국의 전위역할을 하고 나섰다는 점 이다. 이 런 상 황히에서 목은 것을들춘다는게 결고 호락호락하지 만은 않았을 것이댜 고래서 였을까 우리는 고들의 문회권에서 쉽게 탈출할수가없었다. 심지어 조선조를국가개념이 아닌한낫가문세력 으로격하해서 이(李)조선이라고교과서에까지 기술 하므로서 스스로 식 민지 타성을 들어냈었다. 이렇듯 미로같은 역사기행에 동참했던 피해자들 은 또 어떻게 다독거 릴것인가. 최근 우리는 16대 국 회 에서 반성과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친 일 전상규명 법안마저이런저런 이유로 난토질당하는현실을목 격했다. 왜 공연히 궁금층을숙성해서 불필요하게 국론을 분혈하려는것일까. 과거사청산이 보복이나단죄하 자는 것도 아니였은데 말이다. 타락한 욕망은 역사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한다고 했댜 고통 그리고 도 고만한 노력없이 어떻게 역시를 발전시기고 지겨낸 수 있겠는가. 땅에서 연출되고 있는현실은 어차피 그 모두가 역사에 노출되 어 있지 않던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 야기가 되살아나고 잃어버린 감격이 혼연히 피어 나듯 고즈넉한 운치로 재연되고 있는 경복궁편전 을 돌아나오면서 불쑥불쑥 퉁겨져냐온 생각들로 내내시달렸다. 閔 環 圭|법무사 대만법무사엽외 71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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