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 I 전쟁의추억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고렇다 면강산이 다섯번은 변했을세월이홀렀는데도 잊혀 지지 않는 추억, 고래서 노년이 되면 추억을 먹고살 아간다는말이 있나보다. 한국 전쟁 때, 모든 것은 여隣불허 속에 있고 이 국 토에사는시람들은스스로의장래를모른다. 심지어 당장눈앞에닥칠 일조차도모르고살때다. 한국군이 북한에서 철수하는경우 냐는死生關碩의 운명에놓이게된다. 그런때에 후퇴작전중우리 마 을에 주둔했던 한국해병대 중대장의 도움으로 나는 군번 없이 軍裝을 하고, 홍남 철수작전의 최후방어를 하는 해병 대 衍중대 병사들과 같이 작전을마친 훅 미 국공군수송기를타고부산 수영 비행장에 내리니 냐 는목숨을건졌다. 군인들은진격하면서 전투를하지만후퇴를하면서 도 전투를 해야한다. 수백 리를 진격했다가 수천 리 를후퇴할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가지고"승패는 병가의 상사”라는 말을 하는 시람이 있지만그 말은 운동경기 같은 데서나할 수 있는 말이고, 실은 군인 들에게는합당치않댜 전쟁은 잘못되면 다시 할 수 있는 장난도 아니고, 스포츠게임도아니다. 죽이고죽는, 적을죽이지 않 으면 내가 죽는 그런 것이다. 군인들은 총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끊임 없이 전투에 시달려야 하고, 그 전 투에서 전사하거나부상당하는 것, 그리고포로가되 는것이제일큰문제인것이다.가령 어느병사가전 투 중 전사한 후에 그의 부대가 승전했다고 치자 죽 은 병사가그 승리를 구가 할 수 있겠는가? ‘‘시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 익하리오” 그런 성인의 말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레 서 전쟁은무자비하고 냉혹한 것이다. 냐는 군번 없이 군장을 했던 것이 니 월남한 며칠 후 군복과 소총 그리고 탄알을 반납하고 군 대일에서 떠났다. 이 렇게 국적으로 부신에 왔지만 아는 이 하냐 없 는 낯 설은 이 거리, 갈곳이 없어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걸으면서 생각해 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감하다. 군복을 벗고 나니 방한이 안 되는 옷에, 허기 진 배, 겨울 바닷바랍은 뻣골에 스며돈다. 돈 한푼 가진 것 없으니엄동설한에 어디서잠을잘것이며무엇을해 서 어렵게 구해낸 이 목숨을부지할 것인가?한없는 고독김이밀어닥친다. 이런 경우를 사'루소사’는 고의 책에서 ‘내 자신 한 몸 등이를 빼 놓고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사회도 아무 것도 없다. 냐 혼자만이 이렇게 고독하게 존재할 따 릅이다’라고 한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부모형제를 고향에 두고 혼자 떠냐 왔는데 ... 이런 생각을 하니 어 떻게해서라도설아야한다는의지가솟구처오른다. 나는 서대신동 서쪽 구덕 령(해발 400미터 정도) 고 개를넘었다. 농촌을찾아 내가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밥을 얻어먹을 작정 이다. 해 질 무렵 학장리에 이르 니 개울가 길 싶에 조고만 죄판에 시탕과자, 건빵, 인 전미 몇 개를 놓고 지냐는 길손에게 파는 할머니 한 분이 외롭게 앉아 있었다. 몇 시간을 혼자 다니다가 시람을보니, 나는 그 할머니가 몹시 반가웠다. 할머 니! 안녕하세요, 옹뭐 살 것이 있나?아니오 저는 ... 저는 이북에서 피난온시랍인데요 ... 대만법무사럽~ 69 I 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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