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I 전쟁의추억 냐는 그할머니의 소개로조금후 조씨라는시람을 만났고 그와 갑이 한달동안 부산전에서 건축 공사판 노가다로 일했다. 고 일을 끝내고한달 노임을받을 때 인부들중하루도쉬지 않고일한내가노임을제 일 많이 받았는데 안 해본 중노동 일을 하느라고 몸 에 온통상처 투성이었지만고돈을받아줘니 큰부 자가 된 기분이었고 마음의 여유가 좀 생겼다. 나는 그돈으로학장리에돌아와서히숙을시작하고새 일 거리를찾아볼생각이다. 피난민은 점점 더 많이 부산으로 몰려들고 내가 넘 어온 고구덕령을넘어 부산으로 가는오솔길엔 피난 민이줄이어섰다. 전쟁은중공군의 대대적인개입으로 접접 더 치일 해져 갔고, 북한에서 후퇴할 때 3개월 후엔 다시 북진 히여 북한을점령할 것이라면 한국군과 UN군은 북 진은고사하고서울을또 내주고녀 밀리지 않는 방 어 작전을 히는데 힘겹다. 고러 니 냐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일은 생각할 수 없는 정세로 돼 갔다. 이때서부터 나는 기족이 나로 인해 노동당시람들로부터심한 박해를받고혹시 모 두가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닌가, 고런 생각마저 들면 서 그 죄책김에 기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이팠다. 냐는 이웃집에서 지게와낫을 빌려 가지고, 낮은산 엔 땔감나무가 없어서 높은 산에 올라가나무를 한집 썩 해 가지고집에 와지게 재 두었다가그다음날민 동이 트면 그 지게를 지고 지게작대기를 들고 구덕 령 을 넘어 서대신동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시작했다. 부산에 피난민이 많이 모이고 땔감이 부족히여 나 무가 잘 팔린다는 것을 알고 힘든 것을 침아가며 그 런 일을시작한것이다. 구덕 령의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몇 번 씩 지게를 내 려놓고 쉬다가 다시 지게작대기에 의지해 일어실 때 면다리가떤리고중심이 잘안잡혀 지게를전재고 꾸라져 낭떠러지 아래로굴러 떨어질 것 같은 위험을 느낀다. 냐는 ‘‘덕산 나무꾼’D 길이 나무를 하던 시랍 도 아니면서 서투른니무꾼 일울한 것은시장에가 면 나무가잘팔리고, 돈이 생기면방한용내의냐신 발같은필요한것을살수있어 좋고,돌아올때에는 빈 지게를 지고오는 것이 갈때 보다 너무도가벼워 서 구덕령 고개에서 집으로오는내리막길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이 되고, 다 내려가면 그 죄판 할머니의 격려의 말씀을들어가며 인절미를사먹는 즐거움 때문에 피로가 다 풀린다. 고난이 곧 봉행이 아니라고난을극복할의지를잃는 것이 불행이라는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 다. 냐는한달 여 동안나무꾼 일을하다가부산에 뒤늦 게 피난 온 고향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같이 부두노동 을해가며 설았다. 그렇게 설아갈때 부산거리에서 해병대 복장의 군인을 만나 해병대 6중대의 소식을 물어보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6중대가 다른 부대와 같이 중부전선 어느 전투에 투입 됐는데, 격전 끝에 승전은 했어도 심포학 중대장은 무사하나 장병들이 1) 덕산 나무꾼극對겹남도 함주군 덕산면은 농天|가 적고 면 대부분이 높 은 산으로 돼 있어 나무를 해서 함홍시에 나다 팔아 생업을 해 가는 사립이 많고 나무들 잘하는 관계로 덕산면 사림을 ’’덕산 나무꾼“이 라고통칭하는 우스개 밀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