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희생되는참변을당했다는말을전해 주었다. 냐는 그 말을 듣고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고향에 그 부대가 주둔했을 때 밤이면 선임상사가 진지의참호를순찰할때면 냐와길이 다니기를좋 아하고, 그래서 친하게 지내던 그 선임상사며, 수영 비행장에서, 세끼나 굶어 배가 몹시 고플 때 군복을 입었지만계급장이 없는졸때기 인 니를범중이었는 데도 알아보고 경어로 ‘배 고프시지오’'하면서 업지손 가락만한 엿 한 덩이를 주던 그 인정 많은 하사, 그리 고 겁불로 위장한 헬멧을 벗으면 다 냐와 같은 니이 또래의 20세 전후의 순박하던 청년들이었는데, 다 어 떻게 됐을까가벼운부상을 입며라도설아 있어야할 텐데 ... 그런 전선의 비보가지주 전해져올때 당국에서 나 에게 군대에 가야하니 산체김시를 받으라는 통지가 와서 냐는신체검시를받았다. 월남한지 1년여 밖에 안됐고, 피난민으로서 구호양 곡 한 톨 배급받은 일이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 이상 그 시대의 청년이라면 군 복무는당 연한일이아니겠는가. 전쟁이난고때가8.15해방후불과5년, 일제 치하 에서 항일독립투쟁을했다는 분들이 남과 북에서 최 고의 권력자로 있을때나. 그독립투사종한사립이 전쟁을일으켜동족산잔의 내전이 일어났고, 다른한 시람은국방을소홀히 히여 3일만계 수도를빼앗기 는 수모를 당하고, 무고한 청년들은 이 전쟁의 전선 에서 부지기수로 희생된다. 전쟁은그 결과에 책임지 지 않는 시람이 일으키고 그 전쟁 때문에 희생되는 것은 항상 청년들과 백성들인 것이다. 항일독립투쟁 울한시람은동족수백만명이 희생되는전쟁을일으 켜도 그 죄를 물을 수 없는 것인지? 지금 중공군과 인민군은 인해전술을 쓰면서 죽자 사자 하고 대공세를 취하고 있으니 내가 군대에 가면 틀림 없이 죽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징집 영장 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밤잠을 못자며 고민하다가 어 차피 군대에 가서 죽을 몸이라면 적지 깊숙이 침투하 여 비밀공작을 수행히는 부대에 자원입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 후 기희가 주어지면 고향에 가서 살아있는 가족이 있으면 집에서 10리 거 리의 해변에 있는 장문리 어촌에서 어선을 구해 타고 동해로 해서 기족을 구출해 올 심산으로 그 부대에 지원했다. 냐는 죽기를 각오했지만 혹시 천우신조로 실아 돌 아오면그때에돌려달라고몸에 지니고다니던 어머 니 사진 한 장을 고향찬구 K에게 맡겼다. 어머니 사 진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전쟁으로 몸은 일시 떨어 져 있더라도 마음은항상 어머니와같이 있는 것 같 아 위안을 받았는데, 사진마저 주고 냐니 어머니와 다시 헤어지는 것 같고, 이번에는 영영 못 만날 것 같 온 생각으로 기분이 몸시 언짢았다. 나는 영도에 있 는부두에서 소위 공작선이라는배를탔다. 킵캄한밤, 행선지도 모르고 어디 에 가서 어떤 훈련 을받고 무슨 임무가주어질지 모르면서 그 배 갑판 에 서서 냐의 삶이 일마냐 님았을까? 전쟁은 나의 청 춘과 낭만을 송두리째 빼앗고 또 기족과의 시랑을 갈 라놓고 이젠 하나뿐인 목숨도 내놓으라고 한다. 살아 남으려고 집을 떠난 내가 死地인 것을 알면서 그곳으 로 떠냐자니 불안하고 긴장이 되면서, 냐의 운명은 이렇게 기구한 것인기·? 하고 만감이 교자히는 착잡한 섭정 ... 이렇게 전쟁의 피난민으로, 피난 초기의 1년 여 동 안에 겪은 고때의 일들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추억 들이다. 朴 亨 洛 | 법무사(서울북부회) 대만법무사럽~ 71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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