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을 나가사키에 투하하였다. 원래는 미공군 조종사의 공격지점이 나가사키 부근의 병참기지이었으나질은구릅에 덮혀 병참기지를찾지 못하고 회전비행을 하다가 마침 구름의 한쪽이 걷히면서 도시가 내려다보여 나가사키에 그대로 투 하한 것이라고 하는데, 폭탄이 공중폭발을 하면서 버섯구름이 피 어오르고 800도 의 고일 뒤이어 일어난 폭풍과 방시능으로 이 일대가완전히 쑥대발으로 변해버 린 것이다. 이 때 투하된 ‘뚱뚱보’’라는뜻의 패트 • 맨(fet man)이라는 원폭은 길 이 3.25m, 직경 1,52m, 무계 4.5t, 폭발력은TNT화약21kt 상당이라고하며 원 형 그대로의 모형이 자료관에 전시되어 있다. 자료관에는 철모안에 피폭자의 두개골의 일부가 녹아부착되어 있기도 하고, 6 개의유리병이 녹아모두붙어 있기도하고,손뼈와 유리가고열에 녹아함께 뒤 범벅이 되어 있기도 하며, 갈갈이 찢어진 작업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피폭의 중 심지대에 해당하는 우라카미 성당과 성산국민학교는 형체조차 없어져 버렸다. 고 당시 나가사키의 인구는 약 24만명이었고, 원폭으로 인한 사망자 73,884명, 부상자 74,909명 도합 148,793명으로 전 도시 인구의 62%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원폭의 피해는실로가공할만한것이었다. 일본은 1945. 8. 9. 11:02의 비극적 인 시각과 미국과 영국을 결코 잊지 말자고 다집하고 있다. 마치, 일본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처럼. 이는 일본이 미국 의 전주만을 습격하고 만 1년 9개월 만에 받은 보복이 었다. 일본이 땅벌집을 먼 저 건드려 땅벌에계 쏘인 격이니 곧 자업자득이랄 수밖에 없다. 실로 진정한 피 해지는 그 당시 강제정용을 당하여 군수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우리 한인들이 다. 고런데도, 일본은여기에 대히여 눈을감고있다. 현재 일본은 잊지 말자던 미국과 견원지간(犬猿之屈于이기는거넝 순치(脣齒)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냐 냉 엄한 국익 앞에는 과거의 적qg&)도 동지가 될 수 있다는 대목이다. 崔 鎭 泰 | 법무사(대구회) 경운대겸임교수 대만법무사럽~ 73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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