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법무사 1월호

둡 사이로 희 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 건물 들은 일제 강접기 인 1925년부터 외국인 선교사 들이 공회당 등 무려 52개동의 별장을 짓고 살 았는데 구례 사람들이 이 곳까지 선교사들을 바지계나들것에 태우고올랐었다. 선교사들은 지계 위에 앉아피리까지 불면서 오르내렸다니 종교라는게어떤것인지잘모르겠다. 고들이 사용한 별장들은 1948년 여순 사견 이후 빨치산들을 토벌한다고 국군들이 불태워 버려서 지금은뼈다귀처럼추하게 흔적만남게 되 었고, 새 별장촌은 지 리산 납부능선 왕시루 봉으로 옮겼는데 그곳도 명당 터 여서 맑은 샘 물이 흐르고 수영장도 갖춘 경관이 빼어난 곳 이다. 1966년 11월 초 대학 다닐 때 동창들과 같이 화엄사에서 올라 지금 산장 터에 군용 텐트를 치고 캠평했던 추억이 되설아난다. 고때는 노 고단에초가집 한채가있었고노인한분이살 고 있었다. 우리는 억새풀을뜯어서 텐트속에 푹신하계 깔고 밤새 것 술을 마시며 놀다가 새 벽 에 일어나 보니 텐트 주변에 서 릿발이 5cm 정도 솟아있는 추위 속에서 등산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무모하계 도전하는 그때는 겁 없는학창시절이었다. 고 후 1972년도에 노고단 산장에는 털보 함 태식씨가 살았는데 고는 연세대를 나와 직장 과 가족을 다 비 리고 16년간이나 노고단과 지 리산을 자신의 몸보다 더 소중하계 관리하다 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쫓겨나 1988년 피아 골 산장으로 옮겼는데 지 리산에서 생을 마감 하겠노라고 하면서 지리산을 지키고 였다. 가 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그의 지리산 사랑은그가쓴 따尸한번이라도 이곳을거쳐간 사립이라면” 책에 구구절절한 사연이 혈서처 럼쓰여 있다. 지 리산은 한국 제 일의 산으로 1967년 국립공 원제효추로지정되었고 백두대간의 시발점이기 -----------------------------, 도 하다. 1억3천만평에 북한산국립공원의 5.5 배. 混 5개 군에 주능선의 길이가 140km, 1천 m 이상의 산봉우리가 20개가 넘는 우리의 영 산 지리산을수치로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리 석을짓일지도모른다. 2천년 전 백제, 진한 변한에 쫓겨서 마한의 효왕이 달궁에 들어와 지리산을 개산하였는데 서북릉에 성을 쌓고 노고단 아래에 달의 궁전 을 세웠다. 고후 지리산 동쪽에는가락국이 있 었는데 우리나라에는 유일한 석릉 구형왕릉이 산청에 있다. 왕릉에서 왼편으로 1시간여를오 르면 왕산정상못미쳐서 허준의 스승유의태 가 사용했다는 약수터가 있는데 약수를 실것 마시고 잠시 내 려오면 김수로왕의 수정궁터를 만난다. 가릭국은 10대 구형왕까지 이 어져 오 다가지리산에서사라진 것이다. 민중 신앙의 신성한 제단인 노고단에 올랐 다. 박혁거세의 어머니를노고단에 모시고왕 건의 어머니를 천왕봉에 모시면서 산신 신앙과 성모 신앙의 성지가 되였다.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봉우리로 이곳에 서 바라보는 구름바다는 속세인의 마음을 녹이 는정화조역할을한다. 정산은나를보고말없이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랍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납북으로 포장도로를 뚫어서 우리의 영산을 심하계 훼손시겨 놓아 안티낍지만 우리나라에 서 가장웅장하면서도 손쉽게 걸을수 있는포 근한산. 어느장소를택하돈상관없이 어린이 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 산국인 지리산을 묵묵히 올러야 한다. 인수봉이나 천 화대처 럼 암벽등반도 아니고 놀지판도 아닌 우 리의 사상과 역사가 숨쉬는 지리산을 고냥 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대만법무사럽~ 63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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