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법무사 10월호

수서 | 회상 내 고향은 함홍경 사핀海幽少Ji)가 해변을 따라 아득히 끝이 안보이 야속에 있는個村, 내가 고향계서 성장할때에본 기억으로는, 이곳 농부들 은 농사일 할 때 샛밥 없이 일하고 일할때는술을입에 대지 않았다. 일하다 땀을많이 흘리고 갈증이 나면 큰 주 전지에 담아그늘에 놨던물을마신다.또한김을자 주 매서 논밭에 잡초가 별로 없었다. 농기계가 없는 고때 소를 이용해 쟁기로 논받을 갈고, 농약이 없으 니 제초기와호미로 김을랬다, 이렇게 검소하고근 면한생활을하면서, 계으른사람을 보고서 ‘밥 빌어 다가죽쑤어 먹을놈’’이라고 비하하면서 의면하고 사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 렇게 뻣골이 빠지도록 일히는 데도 살아가기가 어 려웠다. 우리 집도 고랬 고 이웃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 사람 사는 세 상이 다그렇게 살아야하는것이려니 하면서 나도 견뎌내던 고향에서의 생활 ..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살던그고향에 왜 이다지도한번가보고싶을까. 이따금 시골길을 다니 다보면 어떤 지방의 얕은 골 짜기에 군데군데 마을이 있는 것을보게 되는데, 이 런 마을에 있으면 나는 이북에 두고 떠나 온 내 고향 마을을 연상하면서 유심 히 살펴보곤 한다. 내 고향은 야산밑온밥이고그아래쪽은天水蕃이 더러 있지만 함흥평야는거의가潘潤施設이 잘돼 있는논이기 때 문에 곡창지대라고 한댜 고향에는 크고 긴 광포價 浦 일명 도련포)라는 호수가 우리 面의 북쪽전부를 휘감았고, 동쪽의 넓은 들은 전체가 바다와 집해 있 다. 그런 것까지 갖춘 농촌마을을 찾아낼 수는 없더 라도 어디에 고향과 비슷한 곳이라도 없을까? 나는 시골길을 다닐 때면 으레 고런 눈으로 살핀다. 그리고 내가 고향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많은 추억 중 잊혀지지 않는 것은 청소년 때 동네 장정들 을 따라서 도시락준비도 없이 소를몰고동해 바닷 가에 가 본 일이 있는데, 그 해변에 제방같은 해안 고, 5월인 그때 그 주변에 호드러 지계 피 어 있는 붉 은해당화는푸른바다와조화를이루어 정말장관 이 었다. 바다 곁 동별(동쪽에 있는 텐 풀밭에 소를 긴 밧줄에 매 놓고, 종달새가 지 저귀는 소리를 뒤로 하고맑은바닷물에서우리들은아랫도리를걷어올 리고발로모래를비비적거려서 조개를잡다가 지치 면 해변에 나와, 그 일대에 지천으로 열리는뱀 딸기 중잘익은것을따혀기를채우던 일, 허기만채우 는 것이 아니라주린 배에 너무포식僧包食)한사람은 가끔 움푹한 곳에 가 앉았다 일어서 면서 바지촘을 만지는 사람은 배달난 사립인데, 그것을 보고 웃다 가 웃던 사람도 이내 독같은 행동을 하던 일을 잊을 수없다. 그리고 여릅에 해수욕하러 갔을 때, 그 해변에서 보면화도(花島酉노에서 일어나던 일, 여름햇볕이 깽 깽한날정오가좀지나서 태양이서쪽으로기울때, 우리가 있는 위치(章文里에서 북쪽으로 2킬로 근처) 에서 보면북동쪽8킬로미터 정도거리 근해에 있는 花島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오색이 찬란한 큰 병풍이 생기고 병풍아래쪽엔가마 같은 것을돈 사람들과 그 앞뒤에 사랍들이 흰옷을 입고 행렬을 지어 화도남쪽멀리형제바위가까이 까지가서사 라지는 신기루(屈氣樓), 고 후 화도가 다시 나타나는 신비스럽던 현상은, 일행이 모두 그것이 신기루라는 모를때고,또한처음보는것이어서 너무도 이상하 여 고것이 사라전 후에도 고 자리에 선 채로서로 얼 굴만 쳐다보던 일은 지금도 생생하계 기 억에 남아있 댜 그래서 이 지방에 정제바위의 전설’'D이 전해져 온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갔던 광포 호수가 와몽상리 해변의 백시장, 이런아름다운곳에서즐 겁게 뛰놀던, 고항에서 지내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나는 동심으로 돌아가 일시 행복감에 빠지는데 그런 때면고향에 가보고싶은생각이 더 간절하다. 젖먹이 아이가어머니의등에 업혀 있으면서도항 I 64 潟E l0 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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