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 | 회상 서 다시 쳐다볼수도 없었다. 그리고고큰물체가 곧바로 나를향해돌진해 와서 덮칠것 같은생각이 들었다 정마뭐가온다!"하고소리를지르고그순 간깔려 죽을지도모른다는공포심이 생겼고, 나는 아버지와어머니에게 달려간 것이아니고 그기치에 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야 무사할 것 같아서 조 금 전에 오던 길로 해서 집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 머니 께서는 그것을 보고 "애야 괜찮다. 이 리 오 너라!"하면서 나를부른다.나는뛰면서한번뒤돌아 보니 아버지와어머니는정신없이달아나는나를보 고 앙천내소(仰天大笑)하신다. 나는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짧은 다리로 있는 힘을 다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계속달렸다. 고런데 고기치소리가 접 접 사라져 갔다. 뛰던것을멈추고돌아서보니 기자 는 어 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나는천천히 걸어서 아까서있던받머리로돌아왔 댜 어머니께서는웃으면서 그렇게도무섭더냐고하 농촌은 봄부터 가을 추수 때까지 농사에만 매달려야 하니 그 시대의 농민은 먹고사는 것 외에 지유가 없 다그렇게두분이 열심히일해도생산한쌀은해방 전에는 공출로 해방 후엔 현물세를 내고 나면 보리 고개를 넘길 때는 해마다 끼닛거리 주선에 시달려야 한다. 이렇게 매일같이 고달픈생활을하다보면 자식 들과 같이 웃을 일이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農者天下之大*'이라고 말하는 농촌의 실상이다. 고랬는데 고 후에 내가 와서 사는 남한에선 이 농민 들의 보릿고개를새마을사업으로 해결했다. 그런데그기자를처음봤을때의추억이 회상될 때마다 내가 어린 나이에 기차가 무서우면 어머니 곁으로 뛰어가서 “어머니 무서우]'하고 어머니 품에 안기지 않고 혼자서 왜 집 쪽으로 뛰 었을까? 철없을 때의 일이었지만 집 있는쪽으로만 뛰었던 그 일이 나는왠지 마음에 걸리고, 전쟁 때 나는슬하를 떠나 지 않으면 修藏참척=자식이 부모 앞서 죽음)의 화 신다. 나는고개를끄덕였다. '‘고것이 기차라는것인 를 면할수 없어 떠났지만, 집을떠난후 돌아가지 네 기치는 저 기찻길로만 다니는 것이야 그래서 이 못하고 있으니, 돌아오지 않는 나를 보고싶은 심정 리로는 올 수 없으니 도망하지 않아도 돼’’라고 몇 번 이고설명하신다. 그랬는데 한참 있다가 똑같은 기차가 민저 번과 같이 나타났다. 나는 무서워서 다시 집 쪽으로 향해 달리다가 뒤돌아보니 부모님은 내가 또 뛰는 것을 보고맡가운데서소리내어 활짝웃으신다. 그후에는 기자가올때마다 나는눈을감고 콩맡 고령에숨었다. 나는그때 부모님 이 같이 소리내어 활짝웃으시 던 고모습,그런웃음은그이후엔본기억이 없다. 우리 형재 6님매를 낳아 키우시느라고 아버지는 농사철만 되면 새벽 별빛을밟으며 농토에 나가셔서 종일 일을하시다가저녁 어두워 집에 돌아오시고농 한기 에는 새끼 꼬고 가마니를 짜고, 또 논밭에 쓸 거 름을 만들고,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아침과 접심밥을 해 일터에 가져가야 하고 또 집안일에도 바쁘시고, I 66 潟E l0 일호 을, 부모님은남에게 드러내 말못하고일마나 기다 렸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 거워집을 느낀다. 일생을 자식들을 위해 고생만 하 신 부모님을 나는따뜻한 마음으로 반포보은仮晴報 恩沿 한번 못한 불효를 한 고 죄책감에, 부모님 이 잠들어 계신 오동봉(고항마을 동님쪽에 있는 산) 기 슭의 선산洗때에 가서 부모님 幽宅앞에 엎드려 나 의 불효에 대해용서를빌수 없을까하는생각을하 면서 옛날을회성하는것이다. 박 형 락 | 법무사(서울북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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