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법무사 1월호

»… I 檀君軒鮮의 建國과都邑地에 關한 小考 (2)檀君朝鮮의 都邑地와 遷都(천도) 事實에 관하여 첫째 檀奇古史에 의하면 扶餘吉林平壤(부여길림 평향에 都邑을 定하고 나라이름(國號虐- 朝鮮이라 學說로 高麗末의 學者 杏村 李룬先生 桓檀古記에는 都邑을 阿斯達에하고 國號를 朝鮮이라하였다. 또 하나는 現在 傳해지고 있는 史料로서 除外될 수 없 는 史書인 揆園史話(규원사화)(숙종 2年 단기 4009 년 乙卯 3月上句 北崩老人(북애노안은 揆園草堂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都邑벤가 (규원초당)에서 서문을 쓰노라고 하였다)에는 都邑 筆者의 見船登登ll)로는 扶餘라는 뜻은 당시 扶餘括笑 을 太白山 西南쪽 牛首河(우수하) 강변에 자리잡고 이 살고 있었으므로먼저 表現하고 吉林이라는것은 壬儉域(임금성)이라 했다. 지금의 옛 만주땅 吉林땅 고곳 즉都펌也를 定하였던 地名울 말하는 것이고 凍洙江(속말강) 南쪽의 蘇密城(소밀성)이 이곳이다. 平壤이라는 것은 古代 우리말로 지금의 서울 大邑 其外 松花江아시달 白岳山아사달 等으로 단군의 점 都邑 等의 古語이며 앞으로 많이 나오는 阿斯達(아 邑池는 지금의 中國땅이 지만 옛 만주땅이 며 고 以前 사달)의 뜻과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平壤 에 우리古代朝鮮의領域이든 吉困附近에都邑울하 이라고논할수없고分H困寸것은지금 中國땅인吉 였다는學說이 多數設이고筆者도 여기에 全的으로 林이라고 믿어진다. 檀君朝鮮의 都邑地에 대하여는 贊成한다. 여기서 詳考할 点은 "河斯達'’과 "平壤'’의 여러 學說과 史書等이 있어 여러곳을 가르기고 있 語原을 살펴보고저 한다. 果然 “아시달’’은 어느 地 댜 이를소개하면 대략다음과같다. 方의地名인지 아니면 나라의 도읍지를가르키는古 (1) 尹乃鉉 博士(윤내현 박사)(단국대학교 부총 代의 전래어 인가를 알아보면 丹齊 申采浩(단제 선 장 • 사학자)의 저서 한국고대사신론에 의하면 中國 체호)이 쓴 朝鮮上古史에 보면 阿斯達은 吏讀文(이 의 史記 ‘‘집해"색은’’에 기록된 바徐廣(서광)의 昌 黎(창려)陣名) 險譜獻접葬독현)과應?(웅소)의 遼東험 독현 臣贊(신찬)의 낙랑군沮水(매수)東쪽의 王險域 이 檀君朝鮮의 最初都邑地(최초도읍지)라고 하였다. 죽 아서달의 워치를 설명한 것이다. 史學者千寬宇선생의 학설 역시 이부분에 대하여 險讀은 ®昌黎 @廣寧 @瀋場(심잉) @樂浪이 라고 하였댜 두문)에 「아스대툐i 발음한바 古語에 松올 「아스」라 하고 山을 「대」라한것이니 지금 中國의 하르빈(哈 爾濱)에 있는完達山이 곧 阿斯達이니 이는 곧 北扶 餘의 故地니 壬儉의 上京이요 지금 蓋平縣 東北의 安市 옛터인 「아리티」는 中京이요 지금의 우리나라 平壤머라」는南京이니 王儉이래도」를따라三京 中 그하니를골라서울이었을것이라고 하나그본 곳은 北扶餘 古地 「아스대」이다. 이외같이 丹齋선생 尹乃鉉博士는 樂浪은 大同江邊이 아닌 지금 中國 은 아시달을 古語로 都邑池名이라고 하였다. 이와 의 河北省 東北音E에 있는 禍石(갈석) 지 역으로 河(난 는 달리 尹乃鉉박사는 고대 한국어에서 아시달의 아 하)의 中下流 東쪽 연안에 위치한 朝鮮縣이라고 하 사는 王이나 大또는 母의 뜻을가지며 達은 邑을뜻 였다. 결론적으로 尹乃鉉박사는 古朝鮮의 최초 도 하는 것으로 阿斯達온 大邑또는 王邑(王都)의 뜻을 읍지는太白山아시달이라고하였다. 가졌다고해석하고 있다. 이 外에도최근에 刑行된 그 다음에 平壤域으로 옮기고 다시 藏唐京(장당 「한민족의 뿌리와단국조선사(김영주 지음)에서 단 경)(北鎖묘으로 遷꿉登민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군의 도읍지는 지금의 中國 옛 만주땅이라고 주장하 檀君朝鮮의都包也에關하여는많은學說이 있는 고있다. 데 여기서 고것을 모두 言及할 수는 없고 代表的인 結論的으로 檀君聖祖께서 朝鮮이 라는 나라를 세 I 68 ;J;n± 1 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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