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법무사 1월호

전선이 낙동강으로 이동하고 있을 무렵 그들은 피난처에 있던학생들까지 등교토록내몰았다. 교장실을 가득 매운 학생들을 향해서 6학년 (당 시 중학6년제) 선배 한서람은 "동무들 반갑소’’ 이 렇게 살갑게 말문을 연다음 고러나 금새 당돌하계도 ‘학교는 이제 우리가 접수 했다. 남조선은드디어 해방이 되었다, 인민공화국 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따라서 3학년 이상은 전원 영광스런 인민군 전사가 되어서 민족의 영웅이시며 경에하는 김 일성 장군께 총성을 다하자” 고 총동을 하였댜 옳소!,옳소! 그교장실에는김일성의사진도걸려 있었다. 즉석에서 5명 의 후보가 선발되 었다. 혁명과사상에 도취적이였던 그들은일체의 개인 행동은용닙하지 않으체 집단만을아무르며 김일성 에게충성을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등교했던 김에 피난으로 비워있던 내 집을 찾았댜 방마다 해집어 놓은 책과 앨범들 ..... . 그들은 앨법 속에서 군경 가족을 찾아 내려던 것 이 역력했다. 피난처에서도 이미 동단위로 내무서 연락사무소 를 개설해 놓고 주민들의 동향을 감시 하면서 외부 에서 유입되는 사람은 곧 신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밤마다 주민들을 모아놓고 김 일성 장군의 교시를학습시키고 아이들에게도 군가와 군사훈련 을시키고 있었댜 우리가 광복을 맞게된것도 그리고 단 한끼의 밥 을 먹을수 있게 된것도 모두가 김일성의 은덕이고 사링이라고역설했다. 가진자와 뭇가진자, 눌린자와 짓밟는자 , 사이에 서 일고 있는 반목과 불신을 씻고 골고루 잘사는 평 등 사회를 이룩한다던 그들은 이처럼 출처불명의 교조주의적 김 일성 사상을 이골이 나도록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긴가민가 하면서도 설마설마 하면서 마음 졸이던 가련한 우리에게 비열과 거짓온 이성의 눈뜨기를 가로막고있었다. 그토록 지루한 일성에서 멸미가 나 있을무렵 낭 보가날아들었다. 낙동강 등지에서 미군의 화력에 예봉이 꺽 인 인민 군이 혼비백산하여 지금쫒기고 있다는소문이다. 감격했던 우리들 마음한가운데엔자유라는환상 이 먼저들어와들먹 거렸다. 우리는 이무서운 체험을 통해서 평화와 자유는 결코 전쟁과 사상을 풀무질해서 만들어 낼수도 도 고렇게 쟁취되는것도아니란 것을알게 되였다. 그리고 더욱 희한한 현상은 공산 사회에 대하여 희의적이고배타적인사고가보다확실하게 굳어지 고말았다는사실이다. 광복 이 후 6.25 남침때까지 고들은 달리는 기차 에 총질을 해네고 벽지에 있던 지서(파출소)를 기습 하는등 극도로 민심을 흉흉하게 혼들고 있었지만 고런 흉악한 현상역시 살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마음만 성했더라도 그토록 참혹한 전쟁을 치루지 않았을텐데 안타까웠을뿐이다. 가을이 저물무렵이면 지금도나는자꾸만 뒤돌 아보며 걷는다. 민 영 규 | 법무사(인천회) 대만법무사업외 71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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