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법무사 2월호

수서| 말 3)서희(徐熙)의 세치혀로강토를회복히다. 고려 성종 12년 거란군의 일차침략으로 북방6진 이 고들의손아귀에 들어가계 되자고당시 내사시 랑(內吏侍郞)벼슬에 있던서희는자전히여 강화사 를 자초하고 적장소손녕과 만나서 단판을 하계 되 었다. 그때적정에게 침략의 이유를묻자그는말하기를 가) 고려국은 옛 선라의 땅에서 태어났는데도 우 리가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땅을 침략하였 으며 나) 고려는 우리와 접경(接境鳩- 하고 있으면서 도 바다건너 멀리 있는 송나라와 통하고 있 을뿐만아니라우리에게 조공을하지 않았 기 때문이라고하였다. 이에서희는답하기를 가) 우리 고려국은 신라땅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 고 옛 고구려 땅에서 그 후신으로 태어났으 며 그렇기에 국호 도한 고려라하고 지계(地 界虐- 말할 것 같으면 귀국의 요양땅도 우리 의 국경 안에 있는 우리땅인데 어찌 우리가 침략을하였다고하며 나) 송니라와교류를 하고 있는것은 귀국과우리 나라의 경계 지점에 여진족들이 점거하여 통 행길을 가로 막고 있어서 귀국과는 통할 수 없을뿐더러조공도불기능한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진족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땅을 회복하게 되면 그곳에 6 전을재축조하여 지킬수만 있다면 어찌조공을하 지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하루속히 군사를 물리치고 우리의 옛성인6전을복원하게 해달라고하였더니 적장소 손넝은 서 희의 논리정 연한 화술에 승복하여 철군을 하계되고 마침내 잃어버린 옛 고구려땅6진을 회복 하계 된실리 외교의 성과를 이루게 된 것이다. • , 66 刃託2 멀포 4) 하공진(河洪OO의 불사이군의 충언(忠言) 고려현종때 거란 성종임금은 친히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제2차로 고려를 침략하여 개경을 황패화 하고 온강토를숙대받으로 만들었다. 이 에 다급한 국왕은 남쪽으로 몽진像:庫)을 하게 되자 그 당시 시랑공 (侍郞公) 벼슬로 있던 하공진 은 지금의 청와대 경호실 책임자격에 해당하는 사 람으로 그는 꺼져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강화 사신을 자청하여 낯선 거란 땅에 들어가서 거란군 의 철군을조건으로 그곳 적지에 인질로잡혀 있었 던것이다. 오랫동안 거란국에 머물러 있던 중 사람됨됨 이 출중하고 장부의 기질이 역역하여 거란 성종임금 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리히여 성종은 어떻게 하더라도 그의 신하로 삼기 위하여 몇 번이나 직간접적으로 고의 신하가 되어줄 것을간청하였으나 그때마다 번번히 거절 하므로 한번은 왕이 마지막으로 직접 나서서 나의 선하가 되면 이곳에서 편히 살게 해줄것이니 어떻 냐고물었다. 그때 하시랑공은 답하기를 이렇게 말했다. “하늘에는 두해가 없듯이 총신이 어찌하여 두 임금을섭기겠는가?그러므로 나는본국에 대하여 감히 두마음을 가질 수 없으므로 귀국을 섭 길 수가 없노라고했다.” 총선은불사이군이요 열여는불갱이부(忠臣不事 二君, 列女不更 二夫)라고 하는 고려 인의 총절(忠 節) 정신이 낯선 오랑케 땅에서 꽃을 피우고 그는 불경죄로 비록그곳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으나그 의 일편단심 우국충정의 절의面\義)만은후세까지 만고의 충신으로 고려사 에서 추앙되고 있다. 5) 한말 유학자들의 단발령 항거 일본인의 강점(强占)으로 조선니라가 망하고 일 인들의 식민지하에 있을때 그들은 우리의 재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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