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무사협회 73 ▶▶ 역사속명사들과차한잔 역시 예상했던 대로 가히 접근하기 어려웠던 엄숙한 박사님의 기품은 뵙는 순간부터 우리 모 두를압도했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만이 세상은 열린 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조 박사님의 말씀은 혼 란과 불안 역시 이런 의지로 다스리고 풀어내야 만한다고강조했다. 특히 말씀 중에 가끔씩 휘두르던 엄중한 시선 은 주변을 확실하게 장악한 듯 강력한 인상을 주 었다. 그래서일까 인간 조병옥은 가히 함부로 범접을 허락하지 않은 권위 그 자체였던 것 같았다. 그러나 결코 완고한 편협에 메인 것은 아니었 던것같았다. 정치인은 나를 버려야 하고 늘 깨어있어야 하 며 또 실천을 해야 한다는 말씀 가운데 특히 이 나라를 공산당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굳건한 의지가 절절히 함축되어 있었다. 사실 승전을 위해서는 도취적이였던 북괴는 우 리에게 엄청난 두려움이었고 심층에 잠복한 폭발 물임에분명했다. 그리고 불안은 자력으로 극복해야만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고 그러려면 우선 국력을 길러 야한다고했다. 힘은 나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지켜낸다고 역설 하던 조 박사님의 힘의 예찬론은 끝없이 이어지 고있었다. 그 당시 정적의 사주를 받은 모 청년단 테러조 직이 박사 댁을 기습하여 쑥대밭을 만들고 도주 한 사실이 있었는데, 박사님은 이를 두고서 “참 못난 놈들이야 저 기둥(모서리 기둥을 가리 키면서) 네 개만 뽑아버리면 집이 몽땅 주저앉았 을게아니야!” 못 견디도록 치욕스런 일이였을 것 같은데 그 토록 담담하게 말씀하던 것으로 미루어 오랜 기 간 다져진 내공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였다 고생각했다. 그 우직한 기염에 또 한 번 제압당한 우리는 미 리 준비해 갔던 질문지를 손에 넣고서도 한 동안 마른 침만을 삼키고 있었다. 이렇게 두 시간여 이제 좀 여유가 생긴 것일까 박사님이 입고 계시던 옷자락 사이로 유난히도 쇠약하게 드러난 정강이를 보고서 뜨끔했다. 건강이 걱정되여서다. 그렇게도 왕성한 기량과 확고한 반공의지로 이 나라 재건과 개편의 주역을 자임하시던 박사님이 건강문제로 혹 무너진다면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곧 이 민족의 불행이 아닐 수 없 었기에 자꾸만 얼떨해지던 것을 어찌하랴. 1960년 박사님은 66세를 일기로 끝내 우리 곁 을떠났다. 합법적으로 독재정권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 한 희망을 눈앞에 두고서 말이다. 그래서 더욱 큰 아픔이고 불행이였다. 세상을 바르고 활기차게 바꿔놓겠다던 희망은 박사님의 거친 삶의 흔적 속에서 오랫동안 박동하던 것을 우리는보았다. 민 영 규 │ 법무사(인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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