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무사협회 71 ▶▶ 동트는 새벽의 다뉴브강변을 달리다 고 완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는 매력의 도시 프라하에서의 마라톤이었기에 가능했 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틴성당과 성 미클라슈성당, 천문시계탑 등 중세 의 건축물들로 둘러쌓인 구시가 광장 일대와 짙은 갈색의 블타바 강변을 달리는 마라톤코스에서 만나 는 풍광은 우리 마라토너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 분하였다.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와 그 위에 늘어선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동상들, 그리고 강 건 너 프라하성에 장엄하게 솟아있는 성 비트성당의 위 용은 그중에서도 압권이었다. 프라하에서의 마라톤 은 마라톤이 바로 관광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 님을실감하였다. 프라하는 가히 古건축물들의 전시장이라 해도 과 언이 아닐 정도로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古都답게 고색창연한 중세의 건물들이 즐비하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노천 건축박물관이라 할 만큼 갖가지 양식의 건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 고 있었다. 평범하게 지어서는 건물 대접을 받을 수 없기라도 하듯 건물 하나하나가 독특한 개성미를 발 휘하고있었다. 프라하의 주택과 건물은 모두 하나같이 주홍색 지붕을 이고 있어 마치 도시 전체에 붉은 물감을 뿌 려놓은 것 같아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프라하가 동유럽의 보석, 제2의 로마라는 명 성이 名不虛傳 임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 각을 하였다(프라하는 1992년도에 도시 전체가 유 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프라하의 아름다운 조형물들이 오늘날까지 온존 할 수 있게 된 것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체코 를 침공하자 총 한방 쏘지 않고 항복한 결과라고 하 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유럽인들이 그런 체코인들을 두고 시쳇말로 영혼없는 민족이니 개념없는 국가니 하고 멸시와 조 롱 세례를 퍼부은 것은 나치에 저항하여 피흘리고 있 던 그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코인들은 그런 수모를 무릅쓰고 프라하 를 지키기 위하여 살아있는 천년의 역사를 보전하기 위하여 야만의 총칼 앞에 백기투항하는 굴욕을 감내 하는 길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그 덕분에 프라하는 오늘날 연간 1억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세계6대 관광도시의 반열에 오르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 국가나 민족이 진정 영원히 사는 길이 무엇인지, 역사의 기로에서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중 요한지 곱씹어보게 하는 생생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오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달리면 서 뜬금없이 왠 프라하 예찬으로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지. 나는 머릿속에서 프라하의 잔상을 지우고 비 엔나의 다뉴브강변 달리기에 열중하기로 하였다. 아스팔트길 주변의 숲은 제법 울창하였다. 도로 가에 늘어선 나무들이 연두빛에서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아침햇살을 받아 한결 싱그러워 보였다. 자동차는 눈에 띄지 않았고 이따금 헬멧을 쓴 자전거족들이 내 옆을 질주하였다. 나는 그들을 지나칠때마다“굳 모닝!”하고 아침인사를 건넸다. 그들은“모르겐!”하고 받아 주었다. 저 앞에서 6척 장신의 건장한 사내가 천천히 달려 가고 있다. 나는 조깅 동지를 만난 기쁨에 재빨리 그 를 따라잡았다. 나는 그와 나란히 달리면서 몇마디 말을 건네 보았다. 그는 마라톤을 시작한지 2년쯤 되었고 하프마라톤은 몇 차례 뛰었지만 풀마라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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