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법무사 2월호

72 法務士2 월호 隨│想 10월 초의 청명한 가을날 강동구가 주최하는 선사문화축제가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금년으 로열세번째열렸다. 선사주거지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밝혀진 신석기시대(약 6,000년 전) 최대의 집단취락지로 사적 제26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만 오천여 평 의 문화재 보호구역 내에는 복원한 9채의 신석기 시대 움집, 원시생활전시관 등이 있고, 우거진 소 나무숲, 오솔길, 야외무대 등이 있어 구민의 휴식 과 문화행사 장소로 이용된다. 축제는 원시생활체험, 전통놀이마당, 구립예술 단의 무대공연도 있고, 부대행사로 강동서예가협 회가 주최하는 휘호대회도 열린다. 휘호대회는 초·중·고등부와 성인부로 한문, 한글서예와 문인화(文人畵)부문으로 나뉘어 주최 측이 출제한 명제를 현장에서 작품으로 작성해 제출하고 우수작을 선정해 시상한다. 서예는 붓으로 글씨를 쓰는 법을 배우는 서도(書 道)를 예술이란 뜻으로 일컫는 말로서 문자를 심미 적(審美的) 대상으로 쓰는 예술이며 소재로 쓰이는 명구를 읽고 쓰면서 마음에 새겨 정서를 순화하고 지식과 인내로 심신수양에 큰 도움을 준다. 금년 한글서예 성인부의 명제는“치욕의 삼전 도비 이제도 서 있는가. 민족의 서린 한을 뉘라서 지우리오. 아 우국충정이 간장을 여미는데 무정 한 세월만이 거침이 없구나”로 굴욕적인 삼전도 비(三田渡碑)에 관한 것이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청군에 패한 조선이 청나라 요구에 의해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인조(仁祖) 17년(1639년) 청태 종의 공덕을 새겨 세운 비이다. 병자호란은 인조 14년(1636년) 청태종이 조선 에 군신의 예를 갖출 것을 강요하여 양국관계가 악화되자 그해 12월 10만대군을 이끌고 조선으로 쳐들어 왔다.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남 한산성으로 피신하여 청군과 대치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1월 성은 청군에 의해 포위당해 고립되었 고 청군의 만행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겪는 상황 에서 성내에 비축된 식량은 50일 정도 지탱할 수 있는 양이고 의병과 명나라 원군도 기대할 수 없 게 되자 마침내 항전을 포기하고 항복하기로 하 였다. 1월 30일 인조는 세자 등을 거느리고 성문 을 나와 삼전도에 설치된 수항당(受降壇)에서 청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례(降禮)를 치르고 환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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