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法務士3 월호 역사속명사들과 차한잔(Ⅱ) 수상 건국 초기였던 1950년대는 6.25동난과 사회혼 란 등으로 무척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서민들이 구원의 삶 을 갈구하는 몸부림은 어느 작가의 표현대로 이 미 죽어버린 어미의 마른 젖을 빨아대는 아이에 비유할 만큼 처절했고 또 그토록 허망했었다. 그 런 가운데서도 언제 또다시 6.25와 같은 엄청난 참화가 이 땅에서 재연될런지 알 수 없는 불안은 우리 모두에게 미리 실망을 준비하도록 줄기차게 강요하고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때 방황하던 초라한 잔영이 떠오 를 때면 부지부식 간에 가슴이 벌떡거리던 것을 억제할수가없다. 이렇듯 그때 그 불안은 분명 이 민족에 잠재된 엄청난 좌절이기도 했다. 1957년도 여름 어느 날이던가. 대학 재학 중이던 필자는 한참 의욕이 왕성했 던 같은 과 동료 네 사람과 함께 서울 회현동의 모윤숙(시인)선생 댁을 찾았다. 사실 당초엔 우리들 방문계획에서 비정치인을 배제하기로 했었으나 모 선생님은 시인이면서도 우리 정부의 UN승인을 얻어 내는데 공헌을 하였 을 뿐만 아니라 각종 국제회의에도 참석하여 국 위를 선양하는 등 그 정치적 역량이 돋보였기 때 문에 결국 방문계획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우리 가 선생님 댁 2층 서재에 들어서는 순간 예견했 던 대로 선생님의 소탈하면서도 경계가 확실한 듯한 단호함에 우선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은 앞만 보고 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보 다는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사에 집착하거나 거기 에 갇혀서 살아서도 안된다는 당부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참된 애국의 길에 이르기까지 장장 두 시간여를 우리에게 흔쾌히 할애해주었다. 특히 애국은 고통이 따르는 것으로서 그 길이 비록 고되고 험하다 하더라도 사명을 가지고 투 신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부분에 이르러서는 사뭇 상기되여있었다. 선생님의 말씀 중에 과거에 너무 집착 말라는 이야기는 지난 일에 집착하면 낡은 의식의 간섭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묵은 입자가 살아나 걸그적거려서 현실에서 이상을 실현하는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고 애국을 강조했던 부분에서는 세계를 향해 내달아서 국위를 선양하 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비춰졌었다. 그토록 진솔하고 숭고한 열망이 담긴 말씀을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