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법무사 4월호

72 法務士4 월호 隨│想 만, 저기 보이는 산이 해발 489미터에 이르는 그 유명한 송악산이라고 안내원이 설명 겸 손짓을 하는데 산에는 나무가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산들이 모두 벌거숭이 산들 이다. 땔감이 부족하여 시탄용으로 마구 베어내고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한다고 개간을 하다보니 민 둥산이 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정경이다. 개 성공단 지역을 지나 개성시내를 관통하여 맨 처음 도착한 관광지는 박연폭포. 그 옛날 황진이와 서 화담, 그리고 박연폭포를 가리켜 송도3절이라고 하였다는 박연폭포. 말로만 귀가 아프게 들어온 박연폭포의 그 어느곳에서도 황진이의 모습은 찾 을 길이 없는데 큰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음 각되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 사랑 영원히 노래하라 박연폭포여. 어버이 수령님의 크나큰 은정이 강산에 굽이쳐 흘러 내리는가 대흥산성 높은 벼랑을 타고 내리는 인민의명승박연폭포 오랜 세월 착취자들의 유흥터로 빛을잃었던이곳이 오늘은 인민의 유흥지로 꽃폈나니 설레이는 숲도 어버이 수령님의 그 사랑을 노래하네 - 이하 생략 -” 또한 폭포의 위에 있는 대흥산성에는 개성시 인민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의 비문을 새겨놓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여러 차례 이곳에 오시여 고적 들을 잘 보존함에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 이하 생략-”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이라는 부동문자는 그 후 범사 정, 선죽교, 숭양서원, 성균관 등등의 고적을 둘 러 보는 동안 안내판의 앞부분에 틀림없이 각인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박연폭포에는 우리 일행 외에 북한의 관광객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우리를 상대로, 한복을 곱 게 차려 입은 가판 판매원 아가씨들만 몇몇이 서 성일 뿐이다. 가판대에는 옥수수빵과 약수물 등 의 간략한 먹거리가 초라하게 진열되어 있는데, 무조건 2달러씩이다. 형태에 비하면 비싸지만 호 기심으로 약수물과 옥수수빵을 사서 일행과 나누 어 먹고 마셨다. 가을 하늘 아래 곱게 물든 단풍 잎은 남과 북이 다름이 없어 지금 이 시간에도 남 한의 명승지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건만 인민의 유 흥지라는 박연폭포에는 어찌하여 한 사람의 인민 도, 관광객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 에 머물자 가을 바람에 흐르는 박연폭포의 물길 따라 남쪽에서 온 나그네의 마음도 착찹하다. 12:00경 개성 시내로 되돌아 나와 민속려관이 라는 곳에서 북측에서 자랑하는 13첩 반상기로 차려진 점심을 먹었다. 말이 좋아 13첩 반상기지 윤기없는 쌀에 조를 섞어 지은 밥은 시골 동네식 당에서 내놓는 오천원짜리 백반보다 나을 것이 없는 밥상이다. 찬이라고 해도 기껏 콩나물, 콩자 반, 무말랭이, 도라지, 시금치, 버섯 등의 채소에 한두 점의 고기가 놓인 것이 고작인데 우리 돈으 로 셈하여 18,000원 정도란다. 턱없이 비싼 편이 다. 점심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숭양서원과 선죽 교를찾았다. 「고려말 충신이였던 포은 정몽주 선생의 옛 집 터에 1573년에 이조 봉건시기의 지방사립교육기 관의 하나로서 간소하게 지었으나 크고 작은 건 물들을 합리적으로 배치하고 조화시킨 우수한 건 축물로 약 43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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