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법무사 4월호

대한법무사협회 73 이곳이개성이다 시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의의가 있는 건 축유산」이라고 안내판에 씌여 있다. “다리 옆에 있는 비석은 정몽주를 기념하여 세운 것인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 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여러차례 이곳을 찾으시여 문화유적들에 대한 관리를 잘하여 주변을 근로자 들의 문화휴식터로 꾸릴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선죽교는 고려 초기에 놓은 다리로써 길이 8.35미터. 너비 3.36미터이다. 원래 선지교라고 하던 것을 고려 충신이였던 정몽주가 리성계의 정권탈취를 반대하다가 이 다리에서 피살된 다음 그 자리에서 참대가 돋았다고 하여 선죽교라고 부르게되었다. 1780년에 선죽교 둘레를 돌란간으로 막고 그 옆에 따로 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건너 다니게 하였다. 선죽교는 고려수도였던 개성의 오랜 역사를 전 하여주고있다. 개성인민위원회” 보탬도 뺌도 없이 안내판에 기재된 그대로다. 근로자들의 문화휴식처라는 이곳 역시 근로자 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우리 일행 뿐이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선죽교는 역사에 나오 는 유명세에 비하면 보잘것없을 만큼 작고 초라 한데, 다리 아래로는 발목을 적실 만큼의 얕은 도 랑물이 흐르고 있어 저런 곳에서 포은선생이 척 살 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만고 충신이 한 둘이 아니련만 정몽주 선생의 충절은 백년을 여섯 번 더한 오늘날까지도 인구 에 회자되고 있으니 죽어 오히려 그 이름이 빛남 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다시 우리는 근처에 있는 고려 박물관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개성관광은 유적지가 가까이 그만 그만한 위치에 있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남한에 서 오는 관광객을 편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지척 에 있는 곳만을 보여주는 것일까? 고려 박물관은 특기할 만한 유물이 전시된 바 없고 오히려 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는 것 이 초라할 정도인데, 다만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 은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화약을 사용하여 왜구 를 선멸한 진포대첩에 대한 내용을 회화(繪畵)화 하여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진포가 어디인가. 다른 지역 출신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내 고향 군산의 옛 지명이 아닌가. 타국 땅에서 고향친구를 만난 양 반가움 을금할수없었다. 고려 우왕 6년 500여 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노 략질하기 위해 금강으로 침입한 왜구를 최무선 장군이 화포를 사용하여 대승을 하였으며 당시 사용한 화포가 서양보다 200여 년이 앞선 것이 였노라는 여자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가 여기 에서 말하는 진포가 바로 우리 고향인 군산의 옛 지명이라고 지적해 주자 내심 놀라워 한다. 최무선 장군은 경상도 영주땅에서 태어났고 진 포대첩은 우리 고장 금강에서 이루어진 전투인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북한 땅 개성에 위치한 고려 박물관에서는 자랑스럽게 전시되고 있는데 정작 있어야 할 우리 고장 군산에서는 진포대첩에 대 한 표지판 하나 발견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 개성관광은 말이 좋아 관광이지 북측에서 지정 하는 장소만 둘러보고 사진촬영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안내원을 제외한 주민을 만날 수도 없 지만 설혹 만난다고 해도 대화를 나눌 수는 더더 욱 없다. 버스가 이동하는 순간부터 촬영을 할 수 도 없고 손가락질을 할 수도 없다. 일행 중 한 사 람이“김정일의 어머니가 누구요?”라고 무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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