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法務士3 월호 이 겉으로 체면치례가 아닌 진심으로 표하는 것 임을 느끼게 하였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그날 우리 일행 중에서 한 분이 위급한 상황으로 병원 으로 옮기는 과정이나 응급가료를 받고 있는 동 안 그들이 표시해준 우정이 그러했고, 운명하는 시간까지 그들은 병원을 지켜주었고 다액의 병원 치료비 지급보증을 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상당 액이 소요되는 장례절차비용 일체를 부담하기도 하였다. 내가 급한 사정에서 약국을 찾아 나섰을 때 어 느 중년 부인은 우리가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 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 를 2번이나 따라 건너와 어느 데파트 안을 가리 키며 왼편으로 꺾어 들어가면 약국이 있다고 친 절하게알려주었다. 우리는 입국 첫날 오후 3시에 나가사끼 시청(役 務所)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예정시간을 맞춰서 도착하였을 때 시장은 다른 사정으로 부시 장이 나올 것이라 하였다. 우리가 접견실에 들어 가 예정시간에서 15분을 지나고 나서야 부시장이 나왔다. 우리 측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인 사를 하고 준비해 온 선물을 증정하자 부시장이 답례인사를 하였다.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부시 장의 답례인사는 정중하였으나 앉은 자세에서 하 였다. 국제간의 예방이라 보았을 때 상대편도 일 어나 답례를 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속성의 한 단면을 보 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튿날 투숙한 이나사야마(稻佐山)호텔에서 나 와 이나사야마 산정 전망대에 올라갔다. 전시되 어있는 유화(油畵) 사진을 보니 세계 속의 일본의 나가사끼항 표시를 하면서 아예 한국의 지형 지 도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비록 작은 유화로 그린 지도이기는 했지만 일부러 빠트려 버린 것은 아 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무시를 당한 씁쓸 한 기분이 들었다. 당나라 선박과 오란다(네델란 드) 선박의 내왕을 그린 그림은 있는데 조선통신 사가 온 행사 그림은 아예 없었다. 조선 통신사가 쓰시마에서 나가사끼항을 경유하지 않았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나가사끼에서 구마모토로 이동하는 코스가 산 악지방을 지나기 때문이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농 토라고는 손바닥만한 것도 볼 수 없었다. 그저 울 창한 스기(杉)나무 숲의 산이었다. 나는 이런 환 경에서 곡물 재배할 토지가 없으니 우리 역사에 고려와 조선시대에 왜구(倭寇)가 해안지방을 자 주 출몰 침탈하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 리고 위치상으로 보면 나가사끼는 임진란 조선 출병의 전진기지였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친 절하게 대해 주는 이들의 선조들은 임진란 때 바 다를 건너 우리나라를 침범하는 왜선에 승선한 왜병이었을것이다. 노천 혼욕탕(露天 混浴湯) 쿠마모토에서 1박을 하고 난 이튿날 우리 일행 은 어제의 무거운 기분이 다소 풀리고 여행기분을 느끼며 생기를 찾는 것 같았다. 날씨가 흐려서 간 간히 비가 내리더니 우리 일행이 아소산(阿蘇山)의 활화산 분화구를 오를 때에는 비가 제법 내렸다. 우산을 쓰고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운 김을 보고 곧바로 차에 올랐다. 隨│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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