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법무사 6월호
나와 6.25 전쟁 박 형 락 법무사 (서울북부) 수상 6.25 발발, 동생 생일날 잠자다 인민군에 끌려가 8.15 해방 직후 어느 날, 나는 부평역에 갔다가 이곳 훈련소에 있던 무장한 일본군 중대 병력이 역 앞 광장에 서 소련군 병사 2명에게 무장해제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침략을 일삼고 호전적이며 악독하던 일본군이 굴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나는 침략자들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내가 원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인데, 갈마동에 있는 기숙사에서 고향집 생각이 나면 창문을 열고 바로 뒤에 있는 철로로 달리는 기차를 내다보곤 했다. 1950년 4월초 기차소리가 나서 창문을 열고 보니 화물차에 탱크와 야포 등 병기를 위장하여 가득 싣고 남쪽으로 달리는 것이 보였다. 또, 어떤 때는 인민군에게 흰옷을 입히고 밀 짚모자를 씌워 농민으로 위장해 3.8선이 있는 남쪽으로 수송하는 것이 보였는데, 그렇게 엄청난 수의 병기와 인민군을 매일 수송하는 것을 보고 나는 북한에서 남한을 침략하는 전쟁준비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 다. 그래서 전쟁터가 될 3.8선에 가까운 원산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온 지 2개월 정도 지나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 6월25일에 전쟁이 발발했다. 그래서 나는 김일성과 북한 정부가 6.25 전쟁을 도발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북한정 부가 정말 싫었다. 노동당 하부조직에선 나에게 인민군에 나갈 것을 계속 종용했으나 침략자의 주구인 인민군 에 나가기가 싫어 숨어서 지냈다. 전쟁이 발발한 지 3개월에 접어든 9월 중순의 일이다. 어머니가 올해 우리 집 올벼가 일찍 익어 새로 수확한 쌀로 동생 생일에 쌀밥을 짓겠다고 하셨다. 나는 내일이 동생 생일이고 매일 한데 나가서 자는 것도 지겨워서 설마하니 오늘밤엔 붙잡으러 오지 않겠지 하고, 맨 윗방에서 깊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동네 개들이 요란하게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만일을 생각해 옷을 입고 자던 나는 급히 문을 열고 옆 마당으로 나섰는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무서원(북한경찰)이 총을 들이대면서 누구냐고 묻는 것이다. 이름을 대고 있으려니 아버지가 주무시는 가운데 방에서 고함소리가 나서 급히 앞마당으로 나오니, 아 버지 방에 내무서원 한 명이 군화를 신고 들어가 총을 겨누며 "큰아들이 어디 있어?"하고 고함을 질렀다. 아버 지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내무서원이 "아니 아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다니 말이 돼? 어디 있어 말해!" 하며 젊은 놈이 노인에게 계속 반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화가 치밀어 "동무, 나 여기 있소. 그런데 동무는 신발을 신고 남의 방에 들어가요? 나와요!"하고 큰소 리로 말했다. 그 놈은 아버지에게 "이거 봐. 여기 아들이 있는데 모른다고 해? 반동분자 같은 사람!" 하며 방을 나와 나를 가운데 두고 앞뒤로 총 쥔 놈이 서고 인민위원장과 노동당원들이 따라 서서 인민위원장 집으로 향했 다. 그날 밤 우리 부락에서 붙잡혀 온 청년이 모두 16명이었다. 58 法務士 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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