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법무사 7월호
기획 번역 37 남편을 매일 방문하였으나 지진으로 자신은 피난소 에, 남편은 가나가와현의 병원에 피난하고 있었다. 피난 직후에 남편은 병원에서 사망하였으나 바로 부 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죽은 지 수일이 지난 후 에야 간신히 면회가 되었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화장을 하고 피난소로 유골을 가지고 돌아왔다. 부인이 피난하고 있는 장소는 일반 여행객도 머 물고 있는 한 온천여관이었다. 신세를 지고 있는 여 관에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인에게 향을 올리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고령자는 일시귀 택도 허가가 안돼 장례에 사용할 사진조차 없다. 선 조 대대로 묻히는 묘는 있지만 경계구역 내에 있어 납골도 하지 못하고 있다. 매일 혼자서 피난소로 지 정받은 온천여관의 방 한 칸에서 유골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가설주택 생활 속에서도 자립생활 위해 고군분투 중 내가 후견업무를 맡고 있는 피후견인도 지진이 나 고 3개월 후인 6월 11일 피난처에서 사망하였다. 아 침에 연락을 받고 바로 고속도로를 달려 아이즈와카 마츠 시내의 병원으로 향했다. 피후견인의 얼굴은 매 우 편안해 보였으나, 원폭사고의 피난 지시에 의해 입소하고 있는 시설에서 응급으로 아이즈와카마츠 시내의 시설로 옮겨졌으며 이때 광대한 후쿠시마현 의 끝에서 끝으로 운신도 못하는 80대의 병약한 몸으 로 이동을 한 것이 큰 부담이 되었음이 틀림없었다. 10년, 20년 후의 건강을 위해 결행한 일이 목숨을 단축하는 결과가 되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고령 의 형제들도 모두 피난생활을 하고 있어 부모가 있 더라도 바로 만나러 갈 수도 없었다. 선조 대대로 전 해 내려온 묘도 경계구역 내에 있어 출입이 금지된 터라 무기한 아이즈와카마츠 시내에 위치한 절에 유 골을 맡겨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생의 최후에 이러한 지진으로 목숨을 잃고 선조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묘가 있음에도 납골도 하지 못 한다는 것은 억울하고도 슬픈 일이다. 이것이 사람 목숨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진만이라 면 아무런 영향도 없었을,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고령자에게까지 일률적으로 피난 지시를 내린 정부 와 동경전력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설주택으로의 이전도 늘고 있다. 고령자와 같 은 신체적 약자는 주민센터 기능을 하는 장소에 있 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다. 가설주택의 일각에서는 가설로 그룹 홈도 만들어 복지시설의 직원들도 전 원이 피해를 입은 채 고령자의 개호업무를 계속하고 있다. 자력이 없는 경제적 약자도 주민센터가 준비 한 가설주택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현 내에 걸쳐 건설된 가설주택은 스스 로 선택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오오쿠마 마을이 요 청하여 만들어진 가설주택은 아이즈와카마츠시와 이와키시에만 있기 때문에 오오쿠마 마을에 주민표 가 있는 나는 후쿠시마 시내에 있는 가설주택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스스로 집을 구할 수 있는 자력이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거주의 자유가 제한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이제부터는 자 립하여 살아가기 위해 직업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 는 것이다.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도무지 예측 할 수 없는 상태로 시간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직업 을 구하는 것은 물론, 생활거점을 가설주택이 있는 지역에 두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 도 어렵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의 피난생활이 벌써 8개월 이 상을 경과하고 있다. 많은 피난주민이 피폐해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원자력발전소 문제가 수습되고 조용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어떠 한 큰 재해가 일어 난다 하더라도 누구나가 자립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 금 우리들 사법서사는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 피 해지역의 현장에서 우리가 계속하여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2011. 11. 25.) ▒ 번역 I 박 혜 진 법무사(경기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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