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법무사 7월호
신청서 안에는 각각 본적이 다른 제적등본 5부가 있었다. 강원도 영월군청에서 발 부된 2건과 충북 제천시청, 경북 안동시청, 그리고 전북의 부안군청에서 발행된 것 각 1건이었는데 그 호주가 모두 달랐다. 박 씨의 설명으로는 영월의 것은 장인과 처남이 호주이고, 제천은 처의 전남편 소생인 큰 아들이, 안동의 것은 처의 전남편이, 그리고 부안의 것은 자신이 호주라고 했다. 그 5개의 제적부 중 제천의 것은 필체가 날림이었다. K는 확대경을 들여다보며 5개의 호적을 서로 연결시켜 보았다. 19살 처녀 김현규가 유순자가 된 사연 박씨의 처 유순자는 이름이 두 개이고 본적은 세 군데(연결성을 따지면 두 군데)였다. 즉 ‘원적’이라는 영월군 청에 비치된 친부의 제적부와 오빠의 제적부에는 ‘김현규’라는 이름으로 출가하지 않은 채 각각 등재되어 있었 고 나머지 3개의 제적부에는 ‘유순자’라는 이름으로 호주의 처, 모로 등재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부안과 제천, 안 동까지는 ‘유순자’라는 이름으로 연결이 되었지만 안동과 영월과는 이름이 다를 뿐만 아니라 전적지 기재를 통해 연결 지을 수가 없었다. 제적등본을 앞에 놓고 박 씨가 더듬더듬 들려주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이 사건의 주인공, 즉 박 씨의 처 유순자(원적 이름 김현규) 할머니는 17살 때 6·25전쟁을 겪었다. 강원도 영월, 부모 슬하에서 살림을 배우고 있던 그녀는 전쟁이 터지자 잠시 난리를 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큰오빠 를 따라 얼떨결에 피란길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끌려가 낭패를 당할 만한 젊은이들이나 처녀들만 집을 떠났을 뿐, 대부분 주민들은 그냥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럼에도 거리에는 피란민들로 북새통이었다. 오빠 손을 꼭 잡고도 그녀는 이미 넋이 빠져 있었다. 그런데 큰오빠가 원주 부근에서 국군의 검문에 걸렸다. 27살이었던 큰오빠는 바로 현역으로 징집되었고 그녀만 낯선 동네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난생 처음 고향을 떠났던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조차 몰랐다. 며칠 동안 굶고 지내다 마을 입구에서 피란민을 상대로 밥과 술을 파는 이동술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진하던 국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리기 시작하자 전쟁 내내 끄덕하지 않던 이동술집 주인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떼놈들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며 피란짐을 쌌다. 그 녀도 이동술집 주인과 함께 다시 피란 대열에 섰다. 그때 피란민의 진로를 안내하던 군인과 눈이 맞았다. 키가 작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마음은 착했다. 그 와중에도 둘은 살림을 차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19살짜 리 신부는 그 군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것을 하나씩 둘씩 마련해 나갔다. 그리고 임신도 했다. 그런데 휴전 무렵, 태중의 아기가 8개월째 되던 달에 남편이 전사를 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내아이를 출산한 그녀는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물어물어 고향인 영월로 돌아갔으나 동네는 폭격으로 흔적조차 없었 다. 가족들의 소식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군복에 달린 명찰을 보고 이름은 알았으나 아이의 친아버지인 그 군 인의 생가가 어딘지 전혀 몰랐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따라 경북 안동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전쟁의 피해가 덜했다. 그 녀는 거기서 석공 일을 하는 남자를 만나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동네 대서방에서 시키는 대로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유순자’라는 이름으로 혼인신고를 한 뒤 석공을 아버지로 하여 아이의 출생신고도 했다. 그런데 전국의 일을 맡아 떠돌던 석공은 병을 얻어 객지에서 병사를 하고 말았다. 이미 석공과의 사이에 딸 둘을 더 낳은 그녀는 아이 셋을 이끌고 또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떠돌고 떠돌다 법무사 K의 현장실화 ‘ 사건과 판결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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