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법무사 7월호
법무사 K의 현장실화 ‘사건과 판결’ I 【 제3화】 이중호적 정정신청 사건 이번에는 전라도 정읍 부근에서 대처승려 박 씨를 만나 다시 살림을 차렸다. 박 씨는 그녀가 너무 불쌍하여 그 가족을 자신의 핏줄처럼 아끼고 돌봐주었다. 그녀는 점차 지난 상처와 고뇌를 말끔히 잊어갔다. 둘 간에 사내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났다. 두 사람은 정읍을 떠나 경기도 ◯◯◯시에 정착을 한 뒤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여 논도 사고 밭도 샀다. 박 씨는 그 명의를 모두 그녀의 이름으로 등기했다. 안동과 영월의 호적 ‘연관성 찾기’가 관건 아이들을 모두 결혼시킨 뒤 그녀 부부는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참으로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녀 가 덜컥 대장암에 걸렸다. 소화가 되지 않고 배변이 시원찮아 병원에 갔더니 이미 말기였다. 전신에 암세포가 퍼져있던 그녀는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남편과 막내 내외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았다. 문제가 일어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등기를 대행하던 법무사가 불러서 갔더니 상속등기가 불가능하다고 했 다. 아이들의 본적이 각자 다른데다 유순자 할머니의 호적이 연결되지 않아 등기소에서 각하 결정이 났다는 것 이었다. 각하라는 것이 뭔지 몰라도 하여튼 등기를 할 수 없다며 서류와 돈을 모두 되돌려 주었다.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기는 하겠는데 부부재산관계가 그렇게 복잡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 군데 다른 법무사 사무소를 전전해 봤지만 똑같은 대답만 들었다. 며칠 동안 서류를 앞에 놓고 걱정이 되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박 씨는 다시 등기소 부근을 헤매다가 법무사 K의 사무실에 들 르게 되었던 것이다. 법무사 K는 자신이 남들보다 많이 알고 유능해서 이런 사건을 맡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이 없다보니 소일거리 삼아 손을 댄 것이었다. 사실 상속대상 부동산은 공시시가로 따져 보니 2천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보수표 대로 하면 최대 30여만 원 정도밖에 받지 못할 것 같았다. 박 씨는 아내와 함께 일군 재산을 꼭 회복하 고 싶다며 방법을 찾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박 씨로부터 그간 사정과 그녀의 인생유전을 들은 뒤 K는 우선 안동시청으로 달려갔다. 안동과 영월 간의 관계를 잇지 못하면 이 등기는 불가능했다. 유순자 할머니가 안동의 석공과 결혼하기 전에 또 다른 자녀가 있 을지도 모르므로 이 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사실관계야 어떻든 이 부동산은 영원히 유순자의 이름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K는 그녀에게 호적을 만들어줬다는 그 대서사를 믿어보기로 했다. 전혀 얼토당토않게 호적을 만 들지 않았다면 안동시의 제적부 어딘가에 그녀의 원적 기록이 남아있을 것 같았다. 정말 시대가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려면 관공서를 방문해 보라던 동료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안동시청 의 제적부는 생활민원실에서 모두 보관하고 있었는데 민원실장인 여자직원은 K의 설명을 들은 뒤 관련되는 제 적부를 직접 뽑아서 열람대에 올려주었고 전산기록을 통해 ‘김현규’라는 이름을 죄다 출력해 주었다. 그러나 전산기록에 있는 김현규는 유순자나 영월 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K는 해가 지도록 제적부를 1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뒤적이며 열람을 했다. 그러나 전 제적부를 모두 뒤적여 봐도 영월의 원적 주소와 관련된 김현규, 유순자라는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서사가 불법으로 그녀를 호적에 올린 것이 분 명했다. 그러나 헛걸음이었지만 친절한 직원들 사이에서 보낸 하루가 아깝지는 않았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K는 박씨 가족들을 모두 불러서 가족관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과정에 서울에 유순 자 할머니의 친언니가 한 분 생존해 있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전쟁 전에 시집을 갔으므로 제대 로 영월 호적에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분과 유순자 할머니의 딸에 대한 유전자가 일치하기만 하 50 『 』 201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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