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법무사 7월호

세상만사‘法’대로 기 원 섭 I 법무사 (서울중앙) 법무사 일기 “우리 동문 계신가?”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풍채 좋은 노신사 한 분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 “누구신지…?” “아니, 이 사람아. 선배도 몰라보나?”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낯선 얼굴이었다. 딱 잘라 모른 다고 하면 성을 낼 것 같은 느낌이어서 찬찬히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고등 학교 3년 선배로 동문 행사에서 대기업 임원을 한다는 그를 두어 번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 황당한 일이 있어 상담 좀 하려고 왔다네. 나 는 법을 잘 모르니….” 문득 어두운 낯빛이 된 그는 찾아온 사연을 털어놓 기 시작했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막내아들이 지금 지하철 성추행 현장범으로 잡혀 경찰조사를 받 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로는 피해자라고 하는 20대 중반의 여성이 돈을 목적으로 고소 취소를 하지 않고 있는데, 멀쩡한 아들을 성 추행범으로 몬 그녀가 너무 괘씸해서 무고죄로 고소하려고 하며, 담당 경찰관 또 한 직권남용으로 고소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고소장을 좀 써줄 수 있겠나?” 호소하는 눈빛에 아버지로서의 간절함이 느껴졌지 만, 나로서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그의 얘 기는 다분히 일방적인 무죄 주장으로만 일관되어 있 었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그 여성과 신체 접촉이 있었 던 것은 사실이군요.” “막내가 하는 말이, 손이 그 여인의 음부에 닿았다 고는 하더군.” “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요?” “일부러라니! 이 사람아, 우리 막내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지하철이 갑자기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넘어 지면서 우연히 닿은 것뿐이지, 절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네. 불가항력이었지.” “네. 그래도 그 여성은 수치심을 느꼈을 겁니다.” “일부러 만진 것도 아닌데 무슨 수치심? 불가항력 의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들이 이어지자 그 는 “우리 막내는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다”, “우리 막내를 의심하는 건 아비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라며 펄쩍 뛰었다. “선배님. 아버지로서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만, 이 사건은 성추행 사건입니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 한 여성의 입장이 고려되어야 하는 사건이죠.” “아니, 이보게. 자네는 대체 누구 편인가? 내 편인 가, 그 여자 편인가?” 혹시 아들의 잘못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 을까? 그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공격적으로 나왔다. “누구 편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관계가 정확 52 『 』 201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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