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법무사 12월호

2) 차주환 역, 『논어』 (1971) p.194~196 3) 이병도, 『두보 , 시와 삶』(1993) p.88 고전의 향기 59 았다. 내가 시운을 만나지 못한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세 번을 싸웠다가 세 번 다 패해서 달아나고 말았지만포숙은나를겁쟁이라고하지않았다.나에게늙은어머니가있는줄알기때문이다. 공자(公子) 규가 패했을 때, 동료이던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잡히어 욕된 몸이 되었지만 포숙은 나 를 부끄럼을 모르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보다는 공명(功名)을 천하에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 러워하는줄을알기때문이다. 나를낳은이는부모지만나를알아준이는포숙이다(生我者父母,知我者鮑叔).” 포숙은 관중을 천거한 연후에 그 자신은 관중의 아랫자리에 들어가서 경의를 표하였다. 포숙의 자손은 대대 로 제(齊)나라의 녹(祿)을 받고 봉읍(封邑)을 가지기를 10여 대(代)나 하였는데, 항상 명망 있는 대부(大夫)로 서 세상에 알려졌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 오히려 포숙의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밝 은것을더칭찬하였던것이다. 공자(孔子), 관중의 공적을 높이 평가 논어(論語)에 공자가 관중의 공적을 높이 평가한 구절이 나오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2) ■ 제(齊)환공(桓公)이아홉번이나제후들을규합하는데병거(兵車)를쓰지않고한것은관중의힘이다. ■ 관중의보좌를받은환공(桓公)이제후들을거느리고천하를하나로바로잡아놓아서사람들은지금까지도 그 혜택을 입고 있다. 관중이 없었다면 나는 머리를 풀고 옷섶을 왼쪽으로 여미고 살 뻔했다(중국이 미개인 들의지배를받아,중국의예제<禮制>는다없어져버렸을것이라는뜻임).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당(唐)나라의 시성(詩聖) 두보가 관중과 포숙의 사귐과 관 련하여 지은 「빈교행(貧交行)」이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3) ▒ 번수작운 복수우(飜手作雲 覆手雨), 분분경박 하수수(紛紛輕薄 何須數). 군불견 관포빈시교(君不見 管鮑貧時交), 차도금인 기여토(此道今人 棄如土). 손바닥을뒤집으면구름이요엎으면비라니, 변덕스런무리들을어찌이루다헤아리료. 여보게,보지않았나,관중과포숙의사귐을, 이도를요새사람들은흙처럼여기나니. ,t u., •• ") 1 『언4凡 묘f -j = R fT - u 』 、 q *4 ., k 2 00』F/, 어'3! ` . 4 ` ‘ J . 』 ,8 Ml 3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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