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2~ .2. 고전의 향기 ► 고사성어(故事成語) 이야기(3) 수니지교 (水魚之文) 진 영 환 1 법무사(서울동부) • 대한법무사협회 감사 ‘수어지교(水魚之交)’란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서로 밀접하여 떨어질 수 없는 매우 친밀(親密)한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유 비(劉備)가 삼고초려(三顧草麻)를 한 끝에 제갈량(諸 葛亮)을 만나 당세(當世)의 일을 묻고 그 대책을 받아 들이면서 두 사람의 정(情)이 나날이 깊어진 고사(故 事)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삼국지(三國志)』 「촉지 (蜀志)」 등의 내용을 요약하 면 다음과 같습니다.1) 유ti|(劉備)의 삼고초려(三顧草麻) 유비(劉備 : 161~223)는 한(漢) 경제(景帝)의 아 들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예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짚신과 자리를 엮어 생계를 꾸리다가 황건적(黃中賊)을 토벌한 공으로 안 희현(安喜縣)의 위偉寸)에 임명되었고` 후한(後漢) 말 에 군웅(群雄)들이 쟁패(爭覇)할 때에 일정한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고 20년이 넘는 동안, 공손찬 • 도겸 • 조조 • 원소 동을 거쳐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탁한 뒤에 약간의 군사룰 얻어 신야(新野)에 서 주둔하고 있으면서도, 한실(漢室 : 한나라의 왕실) 을 중흥(中興)하겠다는 큰 뜻은 조금도 혼들리지 않 았다. 이 때 수경선생 (水鏡先生) 사마휘 (司 馬徽)와 서서 (徐庶)의 추천을 받고, 207년(당시의 유비는 47세였 고, 제갈량은 20년이나 연하인 27세였음)에, 남양(南 陽) 융중(隆中)에 은거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춘추전 국시대의 유명한 재상 관중(管仲)과 명장 악의(樂毅) 에 비교하고 있던, 제갈량(諸葛亮 : 181~234)을 세 차례나 찾아간 뒤에야 비로소 만나, 옆에 있는 사람 들을 물리고 아래와 같이 성심껏 가르침을 청했다. “한나라조정이 쇠이하니 간신(好千匠)이 조정을도적 질해 황상(皇上)은 이리저리 떠돌며 온갖 모욕을 당하 고 있습니다. 내가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가늠해 보면 모든 게 미약해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 전히 천하에 대의(大義)롤 펴서 한실을 회복하고자 합 니다. 그러나 스스로 수완이 없는데다 계책도 부족해 엎어지고 넘어지고 하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의기소침하지 않습니다.이제 툭별히 선생께 1) 김원중 옮김 『삼국지 촉서』 (2007) p. 37~71, p.109 ~140, 신원봉 옮김 『제갈량평전』 (2011) p.107~125 『표 내 수 』 201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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