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3월호

52 『 』 2013년 3월호 목록을 적어오라고 했다. “다른 것은 알 것는디 재산은 몰러. 지 년 살아생전 에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혀서 전혀 몰러. 무슨 재산 이 있는지….” “우선 파악되는 것만 가져와 보세요. 그리고 따님 거 처에신용카드나예금통장은있는대로챙겨놓으세요.” 남의 상례에 경우가 아니지만 그래도 재산의 뒷수 습은 제대로 해주고 싶었다. L 할아버지와 인연이 닿 은 지 어언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사이였다. 사흘 뒤, L 할아버지가 가져온 호적관련 서류를 검 토해 보니 딸에게는 아버지와 남형제 3명 외에는 아 무 가족이 없었다. 부친 단독 상속이 틀림없는 것이 다. 그런데 문제는 재산목록이었다. 25살부터 약사를 시작했다고 하니 25년간 가족도 없이 축적했을 재산 이 적지 않을 것 같았다. K는 노인이 가져온 딸의 주 민등록지 주소와 약국 주소부터 검색을 해나갔다. 거주지 아파트는 딸의 소유였다. 표준공시지가로 6 억 원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약국이 속해 있는 3층 상 가 역시 전체가 딸의 소유였다. 건물은 건평이 100여 평이었고, 토지가 35평이었는데 공시지가로도 30억 원 을 호가했다. 그 건물에는 1층에 20평의 약국 외에 15 평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1곳, 2층 전체는 컴퓨터 게 임실로 사용하고 있었고, 3층은 건설회사와 물품대리 점 등 3개의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 에는 커피숍이 들어 있었다. 후일 노인이 조사해온 건 물의 임대료 수입을 보니 매월 1천만 원이 넘었다. 그 런데 노인은 임대차 계약서를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아들 넘들이 감춘 것 같어. 약국에 있던 현찰은 물 론이고 통장이나 카드까정 모두 가져가 버렸능가벼.” “어떻게 하시겠어요?” K는 노인의 의사대로 일을 추진해줄 요량으로 물 었다. 남동생들이 죽은 누나의 재산을 훔쳤다면 상속 인인 아버지의 재산을 훔친 것이어서 ‘친족상도례’의 적용을 받으므로 처벌이 어려울 수는 있다. 그렇지만 고소과정을 통하면 그 실상과 유산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긴. 지 놈들도 묵고 살어야지. 그냥 넵둬.” “그럼 부동산만 등기를 하시렵니까?” “어찌문 되는디?” 피상속인의 주변이 혼잡한 것 같지만 상속관계는 단순한 경우였다. 방계혈족의 난동에도 불구하고 피 상속인 1인과 상속인 1인인 단독상속이었다. 저축금 이나 현금 따위에 관심이 없다면 상속절차에 별 어려 움은 없을 것이다. L 할아버지, 30억상가건물단독상속소유해 딸이 거주하고 있던 아파트와 등기과정에서 찾아낸 소형 아파트 1채를 처분하여 겨우 상속세와 등기비용 을 마련한 L 할아버지는 마침내 상가건물의 소유자가 되었다. 등기 후 석 달 만에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근엄 한 표정으로 K 앞에 나타났지만 K는 노인이 그동안 뭔가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항상 장난기가 느껴질 정도로 눈웃음이 떠나지 않던 예전의 표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빛 좋은 개살구여. 건물이 크면 뭐허구, 싯가가 비 싸문 뭐허녀구. 당장 세입자가 나간다고 보증금 내달 라면 내가 무슨 재주루 1억이 넘는 돈을 만드냔 말여.” 그러면서 세 들어있는 업체의 보증금만 7억 원이 넘는다고 하소연을 했다. 방금까지 곧추 세웠던 목이 어느새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세입자들에게 건물 주인이라는 행세를 하고 인정을 받으려는 과장된 동 작임이 분명했다. “그러면 건물을 팔아 버리세요. 팔십이 되면 돈을 쓰고 싶어도 못쓴대요. 뭐하려고 그런 고생을 하고 마음을 졸이며 사세요?” “그러게 말여. 그렇잖아도 팔라고 조르는 인사가 몇 있어.” 노인은 또 슬프게 웃었다. 딸과 아들들의 무관심 속에서 형성되었던 그 버릇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법무사 K의 현장실화 ‘사건과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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