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3월호
53 있었다. 그러나 이제 거액의 재산이 생겼으니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슬프게 웃지 말고 환한 얼굴, 만면의 미소를 띠면서 말이다. 그런 데 노인은 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K에게 내밀 었다. 복사된 2장의 차용증이었다. “딸의 소지품에서 나왔는디, 도대체 이게 뭐여?” 액면금액이 3억 원과 5억 원으로 된 것으로 둘 다 딸의 인감도장이 찍힌 문서였다. K는 2장의 차용증 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작성일이 2년의 시차가 있는 데 필체나 그 문구가 비슷한 것이 뭔가 좀 이상한 느 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누구지요?” 대주의 이름이 적힌 곳을 짚으면서 물었다. “하나는 3층의 무슨 대리점 사장이고, 하나는 지하 커피집 주인의 것이라는구먼.” “뭐라고 그래요, 그 사람들은…?” “글씨, 맞다고는 허는디, 뭔가 느낌이 이상혀.” 순간 K는 망자의 예금통장과 약국의 현금을 싹쓸 이해 갔다는 그 집 아들들의 행색을 떠올렸다. K는 노인에게 약국 장부를 가져오도록 한 뒤 이 차용증과 함께 필적 감정소에 보냈다. 언젠가 약국관리는 직접 하고 월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가족들도 전혀 모른다 는 말을 들은 터라 장부는 직접 정리했을 거라는 판 단을 한 것이다. 만일 이 차용증이 액면 그대로 채무라면 그 차용 금 8억 원과 임대차 보증금 7억 원을 제하고 나면 건 물을 처분한다 하더라도 15억 원 정도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노인 혼자만 생각한다면 노후자금으로 적지 않은 돈이겠지만 그렇잖아도 하이에나처럼 기회만 노리고 있는 아들들이 그냥 놔둘 것 같지 않았다. 차용증필적감정결과, 거짓으로밝혀져 열흘 만에 필적감정 결과가 나왔다. 2장의 차용증 은 한 사람의 글씨였지만 장부의 작성자와는 전혀 달 랐다. 장부의 글씨를 흉내 내긴 했으나 필의 방향과 각도, 필획 간의 크기, 크기 비율, 필순에 의한 운필 의 순서, 필세 등의 운필상태, 그리고 문자를 구성하 고 있는 점과 선의 상호 길이 비율 등이 전혀 다르다 는 것이었다. K는 차용증에 대주로 적혀 있는 커피숍 주인과 대 리점 사장에게 이 감정서의 내용을 보였다. “나는 잘 몰라요. 할아버지의 아드님들께 물어 보 세요.” 그들은 바로 발뺌을 해버렸다. 역시 아들들의 장난 이었다. 그들은 이 건물을 인근의 공인중개사 5곳에 매각 의뢰를 해놓고 있었다. 건물의 차임 역시 L 할 아버지에게는 얼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의 가정사에 더 이상 개입을 할 수가 없어서 K는 노인에게 재산과 차임의 권리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 을 해주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건물이 팔리든 그대로 있든, 할아버지 살 궁리는 꼭 해놓으세요.” 일흔 다섯이면 아직 10년 이상은 돈이 필요할 것이 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1년쯤 지났을 무렵, K는 L 할아 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아직 정정하던 노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 사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었지만 무위도식하던 아들 3형제의 등쌀에 그 노후가 아파트 경비원 시절만큼 편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추측을 했을 뿐이다. 열흘만에필적감정결과가나왔다. 2장의차용증은한사람의글씨였지만장부의 작성자와는전혀달랐다. 역시아들들의장난이었다. 그뒤 1년쯤지났을무렵, K는 L 할아버지의 부음을들었다. 정정하던노인을죽음에이르게한것이무엇인지정확히알길은없었지만 무위도식하던아들 3형제의등쌀에그노후가편하지는않았을거라는추측을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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