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9월호

65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는 ‘정음 에크리튀르 혁명’을 선언한다. 이에 한자한문세계를 대표하는 부제학 최만리는 한자가 잊혀지면 ‘ 知 ’가 붕괴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혁명을 반대한다. 각 진영을 대표하는 두 천재의 대결은 세종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혁명파가 승리한다. 에게 한자 한문은 삶이었으며 죽음이었다.” ‘한자한문 에크리튀르’가세계의전부인상황에서세종은어린백 성을위해새로운문자를만들것을결심한다. 한글 창제를 둘러싼 두 천재의 ‘ 知 ’의 투쟁 저자는이것을 ‘정음에크리튀르혁명’이라고명명한 다. 세종은 집현전이라는 기관을 총사령부로 삼아 선 두에 서서 ‘정음’ 창제를 진두지휘한다. 세종 자신이 뛰 어난 언어학자였던 것이다. 집현전은 조선왕조 최고의 두뇌집단으로 정음 창제 혁명의 중추였으며, 그 대표 적인 학자가 정2품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였다. 정인지 는훈민정음해례본후서에서말한다. “계해년(세종 25년 1443년) 겨울,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어 개략 그 예와 뜻을 들어 이를 보여주시었다.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다. 형태를 본뜨 되 글자는 고전을 본떴다. 소리에 따랐기에 음은 칠조 에 맞는다. 삼극(三極)의 의(義), 이기(二氣)의 묘(妙), 포함되지않은것이없다.” 뒤이어거멀못을박듯다음과같이메조지한다.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의 울음소리, 개가 짖 는소리까지도모두써서나타낼수있다.” 의성의태어, 이른바모든 ‘오노마토페’를훈민정음은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인지의 혼신을 다한 ‘정음 에크리튀르혁명선언’인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지식인의 전부라 해도 무방한, 한자 한문세계를 대표하는 정3품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정음’이 지향하는 용음합자(用音合字)사상(훈민정음 의 기본원리인 ‘글자는 반드시 합쳐져서 음을 이룬다’ 는 사상)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지만, 자신의 전존재 를 걸고 ‘정음’ 혁명에 반대한다. 조선이 문자를 모르던 태곳적이라면 몰라도 우리 조선에게는 참된 문자가 있 다고 외친다. ‘정음’밖에 알지 못하고 관직에 나아간다 면 언젠가는 한자가 잊혀질 것이고 ‘知’가 붕괴될 것이 라는위기감을느끼고절규한다. 각진영을대표하는두천재의대결은세종의전폭적 인 지지를 등에 업고 혁명파가 승리한다. 저자는 “정음 에크리튀르혁명파와한자한문원리주의의투쟁은정치 권력 투쟁의 ‘이데올로기적인 외피’였던 것이 아니라 그 것자체가 ‘知’를둘러싼투쟁이었다”고갈파하고있다. ‘정음’의 창제와 반포로서 혁명이 완수된 것은 아니 었다. ‘정음’은 문자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텍스트로 비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과정에서 연산군의 정 음 반혁명 시련을 이겨냈다. ‘정음’은 점차 살아있는 유 기체로 성장했고, 이제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보편성을 획득하기에이르렀다. 학창시절 「세종어제훈민정음」 서문을 패러디하여 전설처럼 내려오던 주문(呪文)같은 것이 있었으니 다 름 아닌 “훈민정주 訓民正酒”였다. 우리는 막걸리를 앞 에 놓고 마시기 전에 곰비임비 훈민정주를 낭송하며 풍류남아인척호기를부리곤하였다. 나랏술이중국에달아입맛이서로맞지아니 새이런젼 로어린백성이술을마시고자하여 도 내제마음껏마시지못할노미하니라. 내이위 야어엿비너겨새로막걸리라는술을 맹 노니모든사람으로하여금쉽게니겨날로 마심에흥겹게 고져 따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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