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9월호
66 『 』 2013년 9월호 음악과 인생 하 철 우 ■ 법무사(대구경북회) 자클린이운다, 한남자가운다 자클린뒤프레의 『엘가첼로협주곡』 희귀병으로 요절한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처음 그녀를 알게 된 것은 1987년 가을, 다니던 대학 앞 어느 미장원에서였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손에 잡힌 한 잡지의 사진 속에서 등 푸른 생선처럼 싱싱한 한 여성이 찬란한 미소를 머 금고 있었다. 그 아래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녀는 1987년 10월 19일 마흔 둘의 나이로 요 절하였다.’ 희대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1945~1987). 다섯 살에 첼로를 시작하여 16 세에 정식 데뷔, 그리고 마침내 찬사와 사랑을 한 몸 에 받으며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불꽃처럼 맹렬하게 타올랐던 그녀. 그러나 25세에 찾아온 불치병으로 28세에 연주 자로서의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 ‘다중경 화증’이란 희귀병으로 사지가 마비되고 결국 안면 마비로 눈물마저 흘릴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 이르 렀던 그녀.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를 통해 처음 그 존 재를 알게 된 그 날 이후 자클린 뒤 프레의 음악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나에게 부활하였다. 많은 음반 을 들었다. 특별히 「엘가 첼로 협주곡(Elgar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은 강렬하게 각인되 었는데 그녀가 빼어난 연주 기교를 펼치는 이 곡의 첼로 독주에서는 자클린의 목 메이는 울음소리가 환 청으로 들려오기까지 했다. 슬픔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그녀의 비장한 첼로 연주를 들을라치면 ‘눈물마저 흘릴 수 없게’ 되어 표 정 없이 죽어갔을 그녀의 사진 속 미소 띤 얼굴이 너 무도 투명하게 떠올라 입 속 어딘가를 콱 베어 문 것 같이 아프고, 아팠다. 기쁨과 행복이 미소로 번져 나올 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탈출구로 분출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눈 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삶은 도대체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느끼고 표현한다’와 동의 어가 아니던가. 안면 마비로 표정을 잃어버린 때부터 이미 그녀 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죽은 고기마 냥 혈색을 잃고 썩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감정의 자 유로운 표현이 아니라면 삶은 죽음과 다름없다. 그러나 자클린의 안면 마비증이 머지않아 나 자 신에게도 다가올 증세란 사실을 그땐 미처 몰랐다. ▲ 자클린 뒤 프레. 「엘가 첼로 협주곡」 앨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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