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1월호

올바른 불안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최고의 것을 배운 사람이다. 만약 불안을 도피하여 저속한 향락 에 빠지거나 이를 잊어버린다면 이것은 인간이 인 간임을 그만두고 동물로 전락함을 의미한다. 사람은 꺼질 줄 모르는 영겁의 불 속에서 타면서 오히려 죽을 수도 없는 벌레와도 같다. 도대체 죽을 수 있는 자는 행복하다. 무덤 속에서 영면할 수 있 는 자는 그래도 최대의 불행자는 아니다. ‘最大不幸 者之墓’라고 표시된 무덤 속은 비어 있었다. ‘최대불행자’란 사후에도 있을 곳을 가지지 못한 자가 아니랴? 죽음이 일체의 종말은 아니다. 자살 도 소용 없는 짓이다. 인생은 쓴잔이다. 한 방울, 한 방울 새며 마셔야 한다. 피할 곳이 못되고 절망 을 부등켜 안은 채로 이것을 돌파해야 한다. 나의 양심에 있어서 하느님은 당신의 눈을 나에 게 던지신다. 이제 나는 하느님이 바라보고 계신다 는 것을 잊어버릴 수 없다. 하느님이 이처럼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하느님을 보지 않 을 수 없게 한다. 이때의 내가 실존인 것이니 ‘실존 은 하느님 앞에 있다’ (Existenz ist vor Gott.). 하느님 앞에 외로이 서는 고독한 실존은 몰락이 냐 구원이냐에 대한 결단, 선택 즉, ‘Entweder- Oder’라는 이자택일이 요구되는 것이요, 여기에 절 망에서 벗어나 질적으로 새로운 비약이 이루어짐 으로 구원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단은 참회 에 의하여 직접적인 자기를 버리고 영원한 자기, 본 래적인 자기를 선택함인데 이를 되돌아오기(回還 ; Wieder holung)라 한다. (라) 실존의 3단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의해서 미적, 윤 리적, 종교적 실존의 3단계가 있음은 전술한 바 있 다. 미적실존(美的實存)에서는 사람은 찰나적으로 감각적으로 순간순간을 향락한다. 그 전형적인 것 이 Nero와 돈 주앙이다. 돈 주앙은 관능성의 상징으로서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 오로지 현재의 향락 만을 추구한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중요 하나 필요하면 언제든지 헤어진다. 이어서 결혼도 서로 속이고 자유를 잃어 버려서 가정 속에서 하찮 은 습관에 매이게 된다. 또, 사람은 직업을 가지게 됨으로써 큰 기계의 톱니바퀴의 하나로 되어 버리 며 자기생활의 주인공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미적 생활자는 자유를 좋아하고 속박을 싫어한다. 그래서 인생이 지루하게 되고 우울하게 된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외적인 향락의 자극은 더욱 강렬한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 네로 황제처럼 트로이 함락의 광경을 보기 위해 로마에 불을 놓게 까지 한다. 쾌락주의자의 인생관은 본질적으로 인 생에 대한 진지함이 없으며 책임을 지는 것을 두려 워하는 것이다. 참다운 미적인 것은 윤리적인 것의 지반에서 성 립한다. 참다운 연애는 영원성을 가지며 당연히 결 혼에 이르게 된다. 결혼에서 여성에 대한 태도는 나 날이 새롭게 그것을 획득하는 것이다. 결혼은 윤리 적, 종교적 요소를 지니며 영혼과 영혼의 결합이다. 문제는 저것이냐, 이것이냐, 미적 생활이냐 윤리적 생활이냐의 어느 쪽을 선택한다. 의지적 결단을 가 지고 윤리적 생활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종교적 실존이다. 그리스의 윤리적 영웅 아가멤논은 딸을 희생시켜 나라를 구했으나, 그 행위는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외동 아들 이삭을 신의 희생으로 바치려 한 아브라함의 행위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문제 는 파토스적, 변증법적이다. 영원한 지복(至福)에 대한 파토스적 관계에서 인 간의 정열은 최고조에 이른다. 종교적 실존 전체를 통한 과제는 실존자가 절대적인 정열에 의해서 그 의 실존을 통해서 영원한 지복에 대한 그의 파토스 적 관계를 파토스적으로 표현하면서 또한 변증법적 결단에 관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재적 종교는 현세적인 것으로부터의 체념과 고 뇌와 부담감이 요구된다. 참다운 인간, 상대적인데 75 인문학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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