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4월호

65 수상 수상 도전정신 한 응 락 ■ 법무사(인천회) 한국 독립운동사에 뛰어난 영웅 중의 한 분인 이 회영은 “목적을 달성 못했어도 목적을 위해 노력하 다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한 것 아닌가?”라는 말로 조국 광복의 염원을 청년들에게 일깨워줬다. 조국 해방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대련항에 갔다가 일 본 형사들의 추적을 받고 체포되어 고문 중에 사망 했지만, 그의 말대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어도 그는 담대히 그 길을 갔고 그 과정에서 위대한 생을 마감 했다. 우리는 히말라야 등반 중 조난당한 사람들의 뉴 스를 접하면 “왜 산을 오르는가?”란 질문을 하고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듣는다. 철학 적이든 선문답이든 인간실존의 궁극적 답이든 인간 은 산을 오르고 때로는 조난을 당한다. 지난 50년 간 박창암 경희대 교수의 다울라기봉 등정을 시작으로 가장 많은 한국원정대의 등정은 세 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다. 1977년 9월 15일 고상돈이 정상을 정복한 후 671명이 시도해 121명 (중복 등정 포함)이 등정하고 10명이 사망했다. 세계적 통계로는 1921년부터 2010년 말까지 12,851명이 에베레스트를 찾았으며, 5,104명이 정 상에 섰고 227명이 사망했다. 세계적 등정성공률 은 약 40%, 한국은 18%, 사망률은 세계적으로는 1.8%, 한국은 1.5%다.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14개 봉우리 중 한국 원정대에게 가장 큰 아픔을 안겨준 산은 마나슬루 (8163m)다. 1971년 김호섭 대장의 원정대 당시 김 호섭의 동생 김기섭이 추락사했고, 1972년 2차 원 정에서는 김호섭의 형 김정섭이 대장이었으나, 김 호섭을 포함해 5명(1명은 일본인)과 세르파 10명이 눈사태에 휩쓸려 사라졌고, 김정섭도 다리 불구자 가 되었다. 이 사고는 히말라야 사고 중 1937년 독 일의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의 16명 사망 이후 두 번 째 큰 사고다. 마나슬루의 비극은 2010년 한국도로공사팀의 윤 치원, 박행수 대원의 실종으로 이어졌고, 안나푸르 나 1봉(8,091m), K2(8,611m) 역시 마나슬루 못지 않게 한국원정대와 악연이 깊다. 안나푸르나는 14 개 봉우리 중 가장 위험한 곳으로 등정 대비 사망률 이 38%나 된다. 한국은 1980년, 은벽산악회의 첫 시도에서 정양 근과 세르파가 사망한 것을 비롯해서 1991년 인천 교대팀의 2명, 1999년 지현옥(여성)의 실종, 2011 년 10월 8일 남벽 새로운 루트에서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 등이 실종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도전자들의 용기와 담대함이 경험을 축적시키고 좌절을 딛고 성취감을 안겨줬으 며, 오늘날 한국이 경제대국, 문화강국으로서 기틀 을 잡는 좋은 기초가 되었다. 이회영의 고백처럼 목 적을 위해 어려운 과정을 용기 있게 도전하고 담대 하게 전진할 수 있을 때 그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라 면 선진한국 통일대국의 꿈도 이루어질 것이다. 남극탐험을 먼저 성공한 ‘아문젠’보다 그 과정의 치열함과 진솔한 기록을 남긴 ‘스콧트’를 더 값지게 여기는 것은 과정도 목표만큼 귀하고 아름답기 때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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