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4월호

67 수상 ●기행문 밤거리는 아름다웠다. 깜빡이는 오색형광등이 발 하는 요정들의 아름다운 군무, 달리는 차의 헤드라 인이 교차하면서 현란하게 명멸하는 빛의 불야성은 어둡게만 느껴지던 타이베이 시가 그 높낮이로 인 한 시각적 차이에 따라 낮과 밤의 모습이 극과 극으 로 달라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현란한 빛의 요정은 환상적인 모습으로 내 망막에 비쳐졌고, 작년 추석날 밤 경주 안압지 연못에 비친 달과 하늘에 뜬 달, 목조 건물과 함께 어우러진 그 황홀한 풍경이 번뜩 떠올랐다. 그 순간 두살바기 어 린 막내손녀 민서가 “아름답다”며 탄성을 질렀다. 그 어린 나이에 그처럼 풍부한 감성을 지녔다니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제 언니 오빠 를 따라 영특하고 영민한 것이 아이의 장래가 무척 기대된다. 이렇게 손녀손자들이 천사마냥 천진난만 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가슴에 꿈틀 거리는 무한한 희열과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 었다. 황혼의장미꽃같은아내여! - 신정역의한촌과화연협곡 이틀째인 14일에는 열차편으로 1시간 넘게 달려 동쪽 끝자락 신정역에 도착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차장 밖으로 조금은 남국적이며 이색적인 열대성 식물들과 과일 나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를 보 았다. 우리의 농촌 풍광처럼 전원적이고 목가적이 었으나 인적이 드물어 태고의 심연처럼 고요한 것 이 마치 퇴적한 한촌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 한족과 원주민(마이오족)이 함께 산다고 하는데, 그들이 조상 전례의 유습인 고유한 의상을 입고 알 수 없는 언어와 소리로 말하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그들의 애잔했던 삶의 애환이 교차하는 것도 엿볼 수 있었다. 삶의 목적도 있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지 키고자 하는 전통과 문화를 숙연한 마음으로 감상 하였다. 그리고 다시 버스 편으로 화연협곡이란 곳으로 갔다. 개발중이라 깎아지른 계곡은 현기증이 날 정 도로 아찔하고 가팔랐다. 군데군데 조그마한 폭포 줄기가 흘러내려 쌓인 큼직한 낙석을 보니 몸이 절 로 계곡 반대 방향으로 쏠렸는데, 나는 원래 담이 약한 사람이라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걸었는데도 어 딘가 모르게 공포감마저 느껴졌다. 원주민들은 이런 태고의 원시림에서 절체절명의 생존을 영위하고 동족을 보전하기 위해 협곡 사이 에 외나무다리를 놓고 마치 곡예사처럼 줄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만고풍상의 여건하에 기구절창한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되었다. 인간 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적응하고 살았나 보다. 오락가락 여우비 내리는 가파른 길을 굽이돌아 아슬아슬하게 협곡을 빠져 나와, 황혼에 땅거미 길 게 그늘진 늦은 시간에 야간열차에 올랐다. 차창 밖 하늘에는 실눈썹같은 초승달이 구름 사이로 숨바꼭 질을 하고, 옆에서는 손녀손자를 어르다 잠든 아내 가 누워있다. 쏜살같이 달아난 세월이라는 시간의 열차와 아둔 한 남편이라는 느린 우마차의 멍에에 얽매여 백자 처럼 희디희던 얼굴에는 어느새 검버섯이 피었고, 군데군데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푸르렀던 젊은 날들이 세월 속에서 아내를 황혼의 장미꽃마냥 시들게 만들었다. 흐르고 또 흐른 세월 의 무상함이랄까. 나를 믿고 인생을 맡긴 사람, 이제 는 보상하는 심정으로 아내가 원하는 대로 쌍돛대가 되어 함께 노를 저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날 밤 나는 ‘백사일몽’이라고 꿈길에 후각을 곤 두세우고 들짐승을 쫓는 원시인이 되기도 하고, 때 로는 한 마리의 연약한 토끼가 되어 협곡의 암로를 헤매고 다녔다. 눈을 뜨니 현실이 아닌 꿈이었다. 몽 롱한 상태에서 창밖을 보니 삼라만상이 고요히 잠 든 이국 섬나라의 잿빛 하늘에 별들만 총총하고, 여 명의 시간은 아직 먼 것 같았다. 다시 잠을 청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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