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4월호
수상 ▶ 기행문 주마등처럼 스쳐간 지난 일들이 뽀얀 안개 속에 아 롱거려 꿈길에 접어들지 못한 채 아침을 맞았다. 사람사는곳어디나똑같은인생사! - 용산사와장개석기념관 삼일 째인 15일에는 ‘용산사’라는 절에 갔다. 예불 을 위해 신전을 찾은 신도들이 불전에 초와 향 등을 놓고 예불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향로에 향을 사르 며 촛불을 밝히고 다소곳이 합장을 하지만, 이들은 향을 한 움큼 움켜쥐고 아래위로 흔들면서 예불을 하고, 마친 다음에는 가져온 초·향을 다시 가지고 돌아갔다. 그들 나름의 종교의식이 생소하게 느껴 졌다. 이후에는 재래시장에 들러 대만의 서민들과 어울 려 붕어빵과 과일도 사 먹어 보았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먼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 전에 연약 (경제적 약자)하고 우직하면서도 격동적인 하루의 생업을 시작하고, 아비규환의 촌각을 다투며 살다 가 어두운 장막이 내리면 또다시 먼동이 트기를 기 다리며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문화와 언 어가 다르더라도 ‘삶’이란 쾌도는 모두가 대동소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관광지는 궁정처럼 웅장한 장개석 총통의 기념관이었다. 그의 초상화와 그가 남긴 휘호를 비 롯한 유품, 애장품인 승용차 등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호걸의 정치 철학과 인생관, 가족사, 그가 대만을 재정립하기 위해 펼쳤던 사상과 국민에게 남긴 업적 등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그날 오후에는 4월 중순의 따가운 햇살 아래 가족 들과 바닷가 해변을 산책했다. 싱그럽게 우거진 들 과 그늘진 숲을 따라 걸으며, 수억 년 전 화산 폭발 과 풍화로 굳어진 버섯 모양의 신기한 용암과 경사 로 이루어진 주상절리 등 기묘한 형상의 석회암들 을 구경했다. 갯바위에 서서 햇볕에 버물어진 물비늘이 보석처 럼 영롱하게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노라니, 내 나이 20대의 밤을 지새우고 이른 새벽하늘을 쳐다보면서 알 수 없는 내 미래를 동경 하던 그날의 반짝이는 은하수 같은 풍광들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 펼쳐졌다. 인위적으로 태고의 신비를 만들 수 없듯이 자연 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많은 경이로움에 새삼 경외 감을 느꼈다. 한마디로 선경이고 절경이었다. 숲과 나무와 바람과 바다가 어울린 이 천혜의 정경을 본 다면, 당나라 시성(詩聖)인 두보(杜甫)는 무엇으로 화답할까. 내가 알고 있는 화풍 정선(鄭敾)은 어떤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렸을까. 만일 내가 시인이라면 “아.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 산천이여, 그대로 영 원히”라고 답하였을까? 여행의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피로를 풀어준다는 뜻으로 장개석이 산책한 수목원에 들렀다. 아름드 리 괴목과 붉은 자태를 한껏 뽐내는 선홍빛 연산홍, 고혹적인 장미꽃, 함초로운 백합, 탐스러운 수국, 청초한 개물망초 등 형형색색 흐드러지게 핀 꽃들 의 군락지였다. 자신들이 추앙하는 지도자의 산책 로를 위해 대만에 있는 기화요초를 몽땅 옮겨다 심 은 둘레 길을 돌아 나오다가 파룬궁을 하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다음 코스인 산정 온천장을 거쳐 면세점에서 청 옥(靑玉)으로 빚은 큼직한 거북 한 마리를 봤는데, 그 값이 우리 돈으로 무려 8천만 원이 넘는다는 사 실에 놀랐다. 돌아와 생각하니 대만 여행의 정표로 옥으로 만든 조그마한 반지나 목걸이 하나씩이라도 사서 아내와 딸, 며느리, 손자손녀에게 나눠줄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후 마사지 시술소와 혈액순환 체크를 거쳐 공 항에 도착해 6시40분 비행기를 타고 8시 40분 경 인천공항에 도착,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왔다. 간단 한 여행의 뒤풀이라도 하고 헤어질까 했지만, 직장 사정으로 사위 내외는 평택으로 떠나고 우리 부부 는 서울에서 하루 밤을 더 묵은 후 17일 아침 일찍 열차 편으로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 』 2014년 4월호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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