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4월호

71 법무사의 서재 “아비를 사흘 만에 땅에 묻고 따뜻한 방에서 잠이 잘도 오겠다. 하루 두 끼 밥이 목구멍으로 술술 잘 넘어가더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사람이 안 되려거든 콱 죽어버려라.” 스승에대한그리움 담은 시, 「몽곡」 책에는 다산과 황상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 기가 나오는데, 그 중 황상의 아버지 황인담의 이야 기도 흥미롭다. 황인담은 천성은 말할 수 없이 곱고 맑지만, 당시 아전으로 술에 절어 사는 소문난 술꾼 이었다. 아들 황상 형제가 다산의 문하에서 배우고 있어 황인담이 이따금 다산을 찾아 대화를 나누기 도 했는데, 어느 날 황인담이 다산을 찾아왔다. “선생님! 그간 편안하셨습니까?” “낮술을 한잔했네, 그려.” “그렀습지요. 한 세상 건너가는 일이 다 그렇지 요, 뭐. 취해 살다 꿈속에 죽은 인생이 아닙니까요. 더 갖고 다 가겠다고 아옹다옹 다퉈 뭐합니까? 술 기운으로 둥둥 떠가다가 가볍게 가는 거지요.” “그래도 과음하면 못 쓰네.” “이참에 제 집 이름을 ‘취몽재’로 지으렵니다. 글 하나 지어 주십시오.” 그러자 다산이 황인담에게 써준 글이 바로 「취몽 재기」로, 『다산문집』에 들어있다. 이 황인담의 장례 과정에서 벌어진 다산과 황상 의 소동 이야기도 많은 걸 생각게 한다. 아들 황상 에게 늘 짐이 되었던 것이 마음에 걸린 황인담은 “내가 죽거든 삼일장으로 끝내고, 시묘(侍墓)도 할 것 없다. 마지막 부탁이니 그저 보내다오.”라는 유 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황상은 타고난 성품대로 비록 예법에 어긋나더라 도 아버지의 뜻을 따를 작정이었다. 황상이 이 뜻을 다산에게 전하자 다산이 황상을 큰 소리로 꾸짖는다. “삼일장은 유언 때문이었다 쳐도, 시묘까지 생략 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너라도 여막을 짓고 무덤 곁에 적어도 두 달을 시묘해야 한다. 사 흘 만에 아비를 산에 묻는 것도 해괴한데, 산소를 지키는 사람 하나도 없다면, 오랑캐도 이런 오랑캐 가 어디 있느냐?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다시는 네 얼 굴을 보지 않겠다.” 그래도 황상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자 다산은 다시 붓을 들어 꾸짖는다. “아비를 사흘 만에 땅에 묻고 따뜻한 방에서 잠이 잘도 오겠다. 하루 두 끼 밥이 목구멍으로 술술 잘 넘어가더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사람이 안 되려거든 콱 죽어버려라.” 결국 황상은 스승의 명령대로 두 달간 시묘살이 를 하고서야 이 소동을 정리한다. 이렇게 추상같던 스승 다산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1851년 3월 30일, 황상은 꿈에서 스승을 뵈었 다. 꿈에서 깨어난 황상이 스승을 그리며 지은 시가 바로 「몽곡(夢哭)」이다. “간밤에선생님꿈꾸었는데나비되어예전모습모시 었다네 … 천행으로 이런 날 은혜롭구나. 백년에 다시 만날기약어렵다…때마침옆사람흔들어깨워품은 정다하지못하였구나. 애도함이보다더는못하리. 아 마도세상이끝난듯했네…선생의문도라이름부끄 러워 소와 양에 뿔조차 없는 격일세. 한마음 순수하기 처음과같아잠자리서전날공부펼쳐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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