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4월호

김 청 산 ■ 법무사(서울중앙회) ·본지편집위원 ·연극배우 어느 날 납치되어 12년간 노예로 살았던 흑인 음악가의 ‘실화’ 전국이 「Let It Go」의 리듬에 들썩이던 3월의 주말. 오랜만에 묵직함이 있는 문제작인데다가 마침 그 전 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예술 작품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가지고 영화 「노예 12년(12 Years a Slave)」을 감상했다. 조조할인도 받고, 오랜만에 2시간 남짓 진지하게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 는 시간이었다. 이 영화는 자유인으로 살다가 흑인 노예로 팔려가 극적으로 생환한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 扮)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솔로몬의 자서전(1853년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의 줄거리는 충격적이다. 1841년 뉴욕.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음악가로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솔로몬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간다. 자신은 자유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노예상인 폴 지아마티(Paul Giamatti)는 그의 뺨을 때리며 “너는 자유 인이 아니야. 너는 조지아에서 도망친 노예일 뿐이야(You are not a free man. You are nothing but a Georgia runaway).”라고 소리친다. 결국 솔로몬은 ‘플랫’이라는 노예 명을 받고 두 명의 주인 윌리엄 포드 (베네딕트 컴버배치 扮),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 扮)를 거쳐 12년간을 노예로서 살아가게 된다. 이 영화는 1800년대 당시 만연하던 노예제도를 둘러싼 남북 갈등이나 사유재산으로서의 노예를 반성하지 않는 백인들, 그들의 인신매매에 대한 비난 등 사회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로지 주인공의 고난과 한순간에 자유를 박탈당한 솔로몬의 아픔, 가족을 되찾으려는 그의 의지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같은 처지의 흑인들을 계몽하거나 의식화하고, 이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일어나자고 선동하는 영웅으 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마틴 루터 킹도 아니고, 간디도 아니고, 예수는 더더욱 아니다. 이렇게 이념적·사회적 사유를 벗어나 철저히 개인적 실존에 집중하는 시선은, 솔로몬이 사적(私的) 교수형을 당하는 동료 노예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돌아오는 장면이나, 마지막 생환의 순간에 그를 붙잡는 팻시(루피타 니옹고 扮)를 뿌리치는 장면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같은 흑인이지만 주인에게 간택되어 ‘마님’의 삶을 사는 이웃집 여주인 의 대화에서도 희망은 발견할 수 없다. 필자가 듣기에 영화 속에서 한 번도 ‘Black’이나 ‘Colored’ 등의 흑인을 가리키는 현대식 표현은 나오지 않 았다. 흑인들 스스로도 서로를 향해서 ‘Nigro’, ‘Nigger’라고 불렀다. ‘깜둥이’라는 우리말 뉘앙스 그대로다. 노예는 주인(master)의 소유물이다(“They’re my property”). 사고와 지적인 활동, 창조적인 작업의 주체성 이 철저히 무시된다. 하루에 얼마나 목화를 따는가, 주인의 말대로 충성스레 이행하는가가 이들의 존재가치 요, 효용성이다. 문화가산책 ▶ 영화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난살아남고싶은게아냐, 살고싶은거야!” 『 』 2014년 4월호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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