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4월호

그럼에도 흑인, 또는 노예끼리의 연대를 통한 상황의 개선이나 항거나 폭 동 등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인권이나 인종차별에 대한 집단적 저항같은 것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교과 서적인 인권문제의 제기보다는 한 인간이 겪은 고난과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이 작품이 가진 진정성과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무기력하고 불가항력적인 개인사, 관객은 분노하고 통탄할 부조리 에 치를 떨지만, 정작 주인공은 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인 모습 등을 통해 선동하지는 않지만 직접 감각으로 투영해 들어오는 아픔을 통해 오히려 역설적인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각에서 벗어나 개인 실존에 초점, 오히려 설득력 저 유명한 영화 「빠삐옹(Papillon, 1973)」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스티브 맥퀸(Terence Steven McQueen) 과 이름이 비슷한 감독은 2008년 「헝거(Hunger)」, 2011년 「셰임(Shame)」에 이은 세 번째 작품으로 아카데 미 시상식 최초의 흑인 감독으로서 예술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 세 작품 모두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마이클 패스벤더도 할리우드의 핫(hot)한 대세남이다. 현재 지구상 에서 가장 잘 생긴 영화배우라 칭해지는 이 남자의 연기는, 어찌나 인물에 충실한 악역인지 화면 구석구석에 서 관객으로 하여금 달려나가 뺨을 치고 싶을 만큼 리얼하다. 그는 자기보다 한 세대 앞선 미남배우 브래드 피트(이 영화로 성공한 제작자의 반열에도 오르게 되었다)와 대조를 이루면서도 극의 중심을 (나쁜 의미에서) 확고히 해 주었다는 점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주연 솔로몬 역을 맡은 치웨텔 에지오포의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도 훌륭했다. 1963년 「들백합」 으로 최초의 흑인 남우주연상을 받은 시드니 포이티에(Sidney Poitier)와 그의 후계자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에 버금가는 지적인 외모와 연기력으로 계보를 이을 만하다. 또 최근 TV 드라마 「셜록(Sherlock)」 시리즈와 2013년 블록버스터 「스타트렉 다크니스(Star Trek Into Darkness)」의 주인공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는 ‘못매남’ 베네딕트 컴버베치의 패스벤더와 대조적인 선량한, 하지만 노예 제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 역도 눈요깃감이다. 여기에 여우조연상을 받은 루피타 니옹고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절절하게 다가오는 아픔, 자신을 죽여 달 라고 솔로몬에게 애원하는 장면에서의 감정이입은 순수와 더러움 사이에서 강렬하게 다가온다. 채찍을 맞는 장 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강간도, 칼로 찌름도 아니지만, 떠올리기에 그저 그럴 수도 있는 이 장면의 사실성은 솔로몬이 밧줄에 매달려 한나절 동안 발버둥을 치는 장면과 함께 기억에 남을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그 외의 많은 주변인물, 특히 사라 폴슨의 못되고 이기적인 안주인 연기, 위에 탑시 채프먼(Topsy Chapman)의 구성진 소울 충만한 노래 등은 한동안 잊히지 않을 열연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많은 관객이 지목한 대사는 주인공 솔로몬의 부르짖음, “난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야, 살고 싶은 거라구(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라는 구절이다. ‘생 존(survive)’과 ‘삶(live)’이라는 언어가 가져다 주는 뉘앙스의 차이에서 우리는 이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다. ※이전 원고는 필자의 블러그 (http://blog.naver.com/bluemtr)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73 문화가 산책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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