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4월호
하 철 우 ■ 법무사(대구경북회) 들국화의 「행진」 비가내리면그비를맞으며 행진 , 행진 ! 음악과인생 “터미네이터, 불행을 느껴야행복도 알게돼!” 일요일,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었다. 허벅지 가 간질간질해서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보니 부 재중 전화 한 통. 그것은 C로부터 온 전화였다. C! 이 사내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 거주, 동물병 원 원장이고, 개와 소 그리고 돼지를 수술하며, 이 를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는, 만능 스포츠맨인, 187 센티미터 93킬로그램의, 터미네이터처럼 생긴, 터 프하면서도 로맨틱한, 오십을 앞 둔, 아내와 사별하 고 딸과 함께 사는, 사내다. 이 사내는 일 년에 서너 번 나와 만난다. 고향인 대구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나를 찾는다. 그는 나와 40여년을 사귀어온 이른바 불알친구다. 그는 고등 학교 시절 이른바 ‘짱’이었다. 싸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 긴 방황을 끝내고 C는 늦깎이 수의 대생이 되었다. 우리는 목욕탕에서 적나라한 알몸을 드러내놓고 서로 등을 밀어주곤 했는데, 그의 몸에는 젊은 날 객기의 흔적인 듯, 어설픈 문신들이 여기저기 수놓 아져 있었다. 팔뚝 안쪽과 허벅지에 누구 이름 같기 도 한 한글과 알 수 없는 한문들이 새겨져 있고, 삼 각근에는 산위에 꽂혀 펄럭이는 태극기, 뒤쪽 견갑 골 쪽엔 꽃 같아 보이는 무엇, 그리고 무엇보다 압 권은 역시 가슴 정중앙의 용. 아무튼 나는 터미네이터와 밤 8시쯤 대구의 번화 가 한 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C는 최근 수술 한 개와 돼지와 소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최 근 패소한 소송과 아랫집 부부의 이혼 소식에 대해 말해 주었는데, 내 이야기는 재미없었다. 물론 터미네이터는 역시 너무 맛깔나게, 잘 각색 해서, 귀에 쩍쩍 달라붙게, 개와 소와 돼지 이야기 를 하는 통에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생면부지의 손 님들까지 더불어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 넣어 버렸 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1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가 사무치게 그립고, 남겨진 딸아이가 너 무 안쓰럽다며, 자신의 암울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나는 그를 위로하였다. “터미네이터! 매일 밤 침대에 돌덩어리처럼 쓰러 져서 눈 뜨고 일어나기까지 죽은 듯이 자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잠에 관해 큰 발견은커녕 작은 관찰만 이라도 해볼 생각을 한 적이 있을까? 약간의 불면 은 잠을 평가하는데 쓸 데 없지 않다. 가끔은 불면 의 밤을, 가끔은 실패하는 삶을, 가끔은 좌절하는 사랑을, 겪어볼 일이다. 그것들은 숙면을, 성공을, 사랑을 각각 비추는 거울이다. 터미네이터! 불행을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느끼고서야 안개처럼 불투명 했던 행복의 실체를 알게 되는 거 아닐까?” 서늘한 내 위로에 C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 신의 비겁과 허점과 저열함을 이야기하였고, 나는 그에게 나 역시 그런 수컷임을 자백하였다. 조금은 울적한 분위기가 우리들 주변에 감돌았다. 방광에 『 』 2014년 4월호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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