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12월호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최초의 실존주의 저서다. 당시 마르셀은 덴마크에 살고 있는 키에르 케고르 를 몰랐으며, 1년 후 ‘신유럽 문학지’의 편집을 담당 하였는데 그해 부친이 사망하고 1927년에 『형이상 학 일기』를 출간하였다. 1929년 소설가 모리악으로부터 가톨릭을 믿으 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그의 표현에 의하면 “아득 히 높은 곳으로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이 를 피할 수 없어…” 그해 3월 24일에 카톨릭으로 개 종한다. 이때부터 그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분류 되는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등을 사정없이 비판하게 되었다. 1933년에는 희곡 「부서진 세계」를, 1936년에는 「등대」, 「산정에의 길」, 「투창」을 썼다. 그리고 1939 년에 소르본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그의 철학적 주 저(主著) 『존재와 소유』를 간행하였다. 이듬해에는 몽펠러대학에서 강의를 맡아 『거절로부터 기도로』을 간행하였는데, 이 책에서 마르셀은 야스퍼스와의 친 근감을 나타낸다. 야스퍼스, 하이데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실존주의 철학자인 샤르트르와는 지극히 적대적 관 계였던 마르셀은, 샤르트르의 철학이 적극적인 희망 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비평하고 샤르트르의 저서 에 혐오감을 나타내었으며, “나는 그러한 의미에 있 어서는 실존주의 철학자가 아니다”라며 그와 구별 하여 자기 스스로 신소크라테스주의, ‘그리스도교적 소크라테스’라고 불렀다. 그는 이성과 주체적 사유 를 존중하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을 높 게 평가하였다. 1944년에는 『길을 가는 사람』, 1945년에는 『로이 스와 형이상학』을 출간했으며, 희곡 「지평선」을 발표 하고, 1947년에는 『그리스도교적 실존주의』를 출간 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해에 그의 반려자인 아내가 사망하였다. 60세가 되는 1949년에는 프랑스 아카 데미로부터 문학대상을 받았고, 그해 영국으로 건너 가서 이듬해까지 강의를 하면서 희곡 「시대의 종말」 을 저술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로마는 이제 로마에 없다」를 발표했으며, 『존재의 신비』를 출간하였다. 1952년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1954년에 철학 서인 『문제로서의 인간』, 『지혜의 몰락』을 출간하고 그해 교통사고를 당하여 심한 다리부상을 입었다. 1956년에 괴테상을 수상했으며, 1957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철학회의에 참석하였다. 1958년에 『신의 죽음과 인간』을, 1959년에 『현존과 불멸』을 출간하 였다. 그 후에 수많은 저서를 출간하고 수 개국을 방 문해 강연하였으며, 또 많은 수상을 했다. 마르셀은 파리대학 부근에 있는 라틴지구라는 빈 민구에서 한 눈이 실명되고 다리를 못 쓰는 불구자 의 몸으로 사색과 저술을 하다가 1973년(84세) 10 월 8일에 심장마비로 외롭게 인생을 마감했다. 그는 수많은 철학서와 희곡을 저술하고 독일대학의 상아 탑 속에서만 논의되었던 실존철학을 사르트르와 더 불어 사회적으로 널리 전파하여 전무후무한 철학사 조로 발전시킨 공로가 지대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실존주의 철학을 전 세계적으로 전파 시켰으며,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예술 방면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2. 사상 1) 내면적 관련성 마르셀은 과학적, 이성적인 철학태도를 배격하고 구체적 현실을 현상학적으로 취급함으로써 독자적 인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전개하였다. 합리적인 관념론에 있어 객관적인 확증은 주관과 객관, 현상과 물자체(物自體), 경험적인 내용과 의 식일반 등을 인위적인 이원론으로 다루는데 그치고, 73 인문학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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