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법무사 4월호

80 문화의 멋 • 공감 인문학 후설 (Husserl) 이후 제1의 현상학자, 20세기 윤리학 분야 가장 뛰어난 업적 남겨 막스 셸러(Max Scheller, 1874~1928)는 후설의 영향을 받아 현상학을 정신과학, 윤리학, 심리학, 지식사회학 등에 적용시킨 독일의 철학자이자 윤리학자다. 셸러는 사회학 과 철학,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학문적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현상학적 방법에 의한 실질적 가치 윤리학의 정립과 ‘철학적 인간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카를 만 하임과 더불어 ‘지식사회학’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셸러는 1974년, 독일의 뮌헨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은 원래 바이에른주 한 귀족의 농장관리인이었다. 결혼 후에 는 유대인 부인의 강권으로 뮌헨의 부유한 상인인 처남집 에서 살았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던 그의 부친은 원치 않는 처남집에서 불운하게 살다가 셸러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사망하였다. 셸러는 이런 사실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 와 외삼촌을 싫어해 14세 때는 어머니의 종교인 신교까지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까지 한다. 1893년, 19세 때는 뮌헨대학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하 던 중 8세 연상의 유부녀와 교제해 드디어 결혼하였고, 이 때문에 가톨릭을 떠났다. 1894년에는 베를린대학으로 옮 겨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여기에서 딜타이, 짐멜 등의 강의를 듣고 감동을 받아 철학에 전념하게 되었다. 1년 후에는 예나대학으로 옮겨서 철학 이외에 정치학, 경제학, 지리학 등을 공부하였는데, 특히 오이켄의 지도로 졸업논문 「논리적 원리와 윤리적 원리 사이의 관계 정립」 을 제출한다. 1900년, 26세 되던 해에 「선험적 방법과 심 리학적 방법」이라는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예나 대학의 사강사가 되었다. 이듬해인 1901년에 칸트협회에서 후설을 만났는데, 바 로 이것이 이후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만남이 된 것이다. 셸러는 이때부터 현상학 활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1902년부터 1년간 바이힝거와 함께 『칸트연구』지의 공동 편집자가 되었다. 33세가 되던 1907년에 뮌헨대학으로 전임해 윤리학과 심리학을 강의하였고, 여기에서 립스, 가이거, 라이나하 등 ‘철학적 인간학’의 창시자, 셸러의 삶과 철학 인간은 직관한다, ‘무엇이 더 높은 가치인가’에 대하여! 최진태 법무사(대구경북회) / 법학박사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