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법무사 4월호
81 법무사 2016년 4월호 의 현상학자들과 교제하였다. 이때 그는 아우구스티누스 와 니체를 연구하였으며, 니체를 반대하는 논문인 「도덕의 복권」, 「후회와 재탄생」 등을 발표하였다. 이때 그는 가치 윤리학과 지식사회학이란 이론 세계를 수립하였다. 1910년 36세 때는 아내와의 불화 때문에 대학의 사강 사를 사임하고 이듬해 이혼을 한 후, 괴팅겐과 베를린 등 지에서 자유로운 사회평론가로 활약하며 저술활동에 전념 하였다. 1912년에는 「회한과 도덕적 가치판단」이란 논문을 발표해 짐멜, 베버 등으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그해 두 번 째 결혼식도 올린다. 1913년과 1916년에는 현상학의 기관지에 「윤리학에서 의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을 발표하여 칸트의 형 식주의에 반대하는 실질적 가치윤리학을 제창하였다. 그 후 「공감과 사랑과 증오의 현상학과 이론」을 집필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에는 「전쟁의 본질과 독일의 참전」, 「전쟁과 건설」, 「독일 증오의 원인」 등을 썼다. 1916년에는 다시 가톨릭에 귀의하여 가톨릭 월간지에 논문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에는 외무성 촉탁 사상 선전원 이 되어 제네바와 헤이그 등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19 년, 45세 때는 새로 설립된 쾰른대학에서 철학 및 사회학 교수로 취임, 그해에 「가치의 전도」를 집필한다. 이 시기에는 가치의 철학을 종교철학으로 확대하고, 종 교의 본질현상학을 구상했으며, 1921년에는 『인간의 영원 성』을 출간하였다. 1923년에는 범신론적 입장을 취하면서 자신은 가톨릭 신자라고 느낀 적이 없다고 선언(가톨릭교 리상 이혼은 금지되어 있음), 두 번째 아내와 다시 이혼한 다. 50세가 되던 1924년, 『지식사회학의 제문제』를 출간하 고, 이듬해 『지식의 형태와 사회』도 출간한다. 1928년에는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출간했고, 그 해 4월, 프랑크푸르트대학 교수로 전임하여 대학 부설 사 회과학연구소장 직을 맡았다. 그리고 한 달 후인 5월 19 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이듬해 유고(遺稿)집으로 『철학적 세계관』이 출판되었 다. 하이데거는 “만약 누군가가 현대철학을 읽어야 한다면 먼저 셸러를 읽어야 한다”면서, 그를 ‘거상(巨象)’에 비유 하였다. 또, 보헨스키는 셸러를 ‘창설자 후설 이후의 제1의 현상학자’라고 치켜세우며, 윤리학 분야에서 그의 업적은 20세기 전반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평(評)한 바 있다. 현상학, 20세기 과학에 포섭된 철학을 구하려는 제3의 시도 ◎ 철학적 인간학 셀러는 본질직관을 위한 현상학적 방법론에 있어 인식 론 측면에서 인간학, 가치윤리학, 문화 및 종교 등의 영역 까지 응용하여 이를 체계화하였다. 그는 지식을 지배지식, 본질지식, 형이상학적 지식 등 3종으로 분류하였다. 지배지식 (효용지식) 지배지식을 기초로 하는 것으로서 세계와 자기 자신을 지배하기 위한 실증 과학적 지식 본질지식 (교양지식) 모든 존재자의 본질에 관한 지식 사랑, 선, 미의 본질을 추구하는 지식 형이상학적 지식 (구원의 지식) 과학의 한계를 초월한 지식, 즉 절대자 등을 그 대상으로 하는 지식 ‘인간이 무엇이냐’를 묻는 철학적 인간에서 출발하는 것 | 지식의 3가지 종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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