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법무사 5월호

80 문화의 멋 • 공감 인문학 를 미화하기 위해 신화를 빌려왔다. 불화의 여인 ‘이리스’는 황금사과를 던지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만이 이 황금사과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미에 대한 여인들의 집착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황금 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열린 미인 콘테스트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밀린 헤라와 아테네는 복수를 시작하는 데,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그리스 신들의 트로이 정벌이 ‘신이 결정한 명백한 운명’이라는 명분 속에 일어난다. 근대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미화한 것과 동일한 사고방식이다. 전쟁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 자체였다. 아무리 호메로스에 의해 그들의 용맹과 지모가 칭송된다 한들 그들의 전쟁은 약탈이었다. 그런데 여기 아 킬레우스가 보여준 특이한 장면이 있다. “보물들, 구역질난다. (중략) 아니, 땅위의모든모 래알과 먼지보다 많은 보물을 줄지라도 아가멤논은 나의 투지를 되돌릴 수 없다. 이 찢어지는 분노를 달 래지않는한.” 이상하게도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이 제시한 엄청난 보 물도, 자기 딸과 결혼시켜주겠다는 제안도 코웃음으로 일 축한다. 아킬레우스는 전리품을 탐하는 전사가 아니고 명 예를 위해 사는 진정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재 물로는 살 수 없는 영웅의 마음, 재산보다 소중한 것으로 서, ‘명예’를 영웅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로 그려냈다.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호메로스가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신의 뜻 에 의해 결정된다는 세계관 속에 살았다. 트로이 전쟁이 터 진 것도 신들의 장난 때문이요, 트로이가 몰락한 것도 신들 의 뜻이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요구하여 아킬레우스 를격분시킨것이나, 테티스의간청으로제우스가그리스군 의 패배를 유도한 것이나, 헥토르에게 파트로클로스가 죽임 을당한것이나, 모두신의뜻임을명확히밝히고있다. 그리스 신들은 인간사의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하여 자 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인간은 신들 의 장기판에 놓인 말들인가? 하지만 호메로스는 「일리아 스」를 통해 신의 뜻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딪혀 연출되는 인간세상의 복잡다기한 모습을 재현한다. 신의 뜻에 의해 세계가 움직인다는 그리스인들의 오래된 신념을 정면으로 거부할 수는 없었으므로,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끝은 신 들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그 신의 뜻은 인간에 의해 실현된다. 호메로스 는 신의 섭리가 인간의 의지를 매개로 실현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신과 인간의 소통이다. 세상은 신의 의지대로만 결정되는 것 이 아니라, 인간의 동의를 얻어 관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메로스는 모든 사건을 신과 인간의 대 화 속에서 결정되도록 그린다. 헥토르의 시신 을 아버지 프리아모스에게 넘겨주는 아킬레우 스의 관용도 신들의 합의가 아킬레우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도처에서 인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