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법무사 5월호
81 법무사 2016년 5월호 간을 신과 대등한 지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일리아스」 전편에 걸쳐 매우 특이한 중대 사건이 일어 난다. 아킬레우스의 사랑하는 벗,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 의 손에 죽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여 원수를 갚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다짐 한다.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헥토르를 죽이면 그 다음에 는 아들이 죽을 것이라는 신탁을 떠올리고는 슬픈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자식의 고집을 이기는 부모가 있던가. 신도 어찌 못하는 인간의 결단. 인간 운명의 궁극적인 결정권은 인간 에게 있다는, 이 자유의지에 대한 옹호야말로 호메로스가 그리스인에게 물려준 가장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다. 인간 의 눈으로 세계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스인들에게 그 ‘인간의 눈’을 준 이가 바로 호메로스였던 것이다. 사실적인 너무나 사실적인! 호메로스의 묘사는 사실적이어도 너무 사실적이다. 이 는 헥토르를 살해한 후 그의 시체를 끌고 다니는 아킬레 우스의 잔혹성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극치를 이룬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질질 끌고 다니는 것만 으로는 성에 안 차,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에서 트로이 포 로들을 산 채로 화장해 버린다. 이 장면이 얼마나 사실적 으로 잔혹했으면 플라톤마저 나서서 호메로스의 이런 장 면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했을까? 하지만 이 냉혹한 사실주의야말로 동양인에게는 찾아 볼 수 없는 서양인들만의 지적 특질이다. 동양화는 변하지 않는 것만을 그리기에 동양화에는 그림자가 없으나, 서양 의 인상파 화가들은 그림자를 면밀히 관찰해 그림자에게 까지 빛깔을 집어넣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이러한 서구인의 ‘냉정한 객관성’, 그 숙명적 사고방식의 뿌리, 저 깊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트로이 전쟁, 과연 역사적으로 실재했을까? 고대에는 트로이 전쟁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 의심 하지 않았으나, 19세기의 비판적 역사 연구에서는 허구적 인 신화로 취급하는 풍토가 강했다. 그러나 독일의 고고학 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 1870년부터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충돌이 있 었다는 역사적 근거를 얻게 되었다. 또, 1930년에 미국의 칼 블레켄(Carl Bregen) 교수가 트 로이 유적에 대한 과학적인 재조사를 하는 등 근대의 고 고학자들은 오늘날 터키 서쪽 다르다넬스 해안에서 9층으 로 쌓인 트로이 유적지를 발견하고, 그 가운데 여섯 번째 층이 그리스군에게 기원전 약 1200년경에 파괴된 도시의 유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언에 의하면 알렉산드로스는 동방원정 길에 이곳 트 로이를 방문하여 아킬레우스를 참배했다고 한다. 그는 스 승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호메로스의 작품을 아주 상세 하게 배웠다. 에게해와 흑해를 잇는 다르다넬스 해안의 관 문을 점령하고 있는 트로이 성은 여러 차례 이민족의 침략 을 받는 가운데 파괴되고 재건축되는 과정을 거듭했다. 유 적지에서 마지막으로 형성된 층은 로마인들이 점령하여 세운 도시 ‘일리온’으로 밝혀졌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신과 영웅들의 경쟁 및 불화로 돌리고 있으나, 전쟁의 실제 원인은 다르다넬스 관문을 통과해 흑해에서 교역을 시도하던 그리스인들이 그곳을 지키며 일종의 통과세를 요구하는 트로이인들과 충돌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 『철학콘서트 2권』, 황광우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 『인문학명강서양고전』, 21세기북스, 강대진편 3. 이태수(인제대석좌교수) 강의자료(조선일보 2015. 5. 중앙일보) 4. 고미숙(고전평론가) 「중앙일보」 2016.2.19. 5. 기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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